♬이소라 | 듄
그 누군가의 심장이 이 땅, 이 구름, 저 요란한 폭우와 반짝거리는 이슬, 그리고 푸른 언덕 사이를 떠도는 거인들을 그리워했었다… 그는 회상했다. 이렇게 환한 아침에 지구가 아닌 곳에서 새는 아엘리타의 꿈을 노래했던 것이다…
-알렉세이 톨스토이, '아엘리타'
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목과 팔목까지 가린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엷은 아마 빛 머리카락의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높이 올린 여인의 머리 위에서는 도금한 책표지들에 반사된 광선 속의 먼지가 춤추고 있었다. 그 여인은 어제 호숫가에서 화성인이 아엘리타라고 부르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90p
"… 어제 우리는 호숫가에 앉아 있었는데 떠오르는 붉은 별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이는 '저 별은 사랑의 운무로 싸여 있습니다. 사랑을 맛본 사람들은 영원히 죽음을 모릅니다.' 하고 말했어요. 선생님! 내 가슴은 근심으로 터질 듯했어요."
-116p
아엘리타의, 사랑의, 영원의 목소리, 그리움의 목소리가 "당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당신은 어디에, 내 사랑" 하고 부르고, 찾고, 외치면서 전 우주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173p
한창 순정 만화에 푹 빠져있던 시절,
어느 순정 만화의 주인공 이름 같기도 하고 내가 언젠가 끼적이던 그림 속 여인에게 붙인 이름 같기도 한,
애틋하면서도 왠지 모를 애수를 자아내던 책의 제목- '아엘리타'.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책을 집어 들었다..
저자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와 성이 같다는 점에서도(?) 괜히 더 호감이 갔다.
차갑게 반짝이는 은빛 광선을 품은 듯한 제목이라 느꼈는데
그 어감과도 적절하게, 책에서는 아마 빛 머리칼에 희고 푸른 안색을 지닌 여인 '아엘리타'가 등장한다..
게다가 이 책은 SF 로맨스다.
그것도 지구인 남성과 화성 여인이 사랑에 빠지는.
내가 느낀 로맨틱하고도 아련하고 신비로운 감성이 제목과 내용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아엘리타의 연인, 로스가
화성으로부터 오는 전파 신호를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신호란 다름 아닌 아엘리타가 화성으로부터 보낸 메시지였다..!
지구인인 우리는 왜 저 머나먼 우주에 생명체가 있을 거란 기대를 품으며
미지의 별을 동경하는가.
어쩌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지구별 밖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지구를 품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적 차원에 속한 것이어서가 아닐까..
아엘리타의 사랑의, 영원의 목소리, 그리움의 목소리가 책 밖으로 나와
나의 우주 속을 떠돌며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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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 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