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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Jul 13. 2021

슬픔을 배우다:

연극발표회. 20210707

7월 7일 장진의 '서툰 사람들'낭독극으로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연했다.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낭독극이라 무대는 단출하고 밋밋했다. 나에겐 연극 제작 실습수업을 마무리하는 날이고 학생들에게는 4개월 동안의 흔적을 공연으로 보여주는 날이다. 공연이 끝난 후 짧은 무대인사의 뭉클함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도 싶었다. 배우 문제로 연기된 발표회였다. 그런데 설마 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5시 공연시간이 다 되도록  K가 도착하지 않았다. K에 대해서 조금 깊이 말하자면 1학년인 K는 극단과 협업하는 연극수업에 꾸준히 참여하고 연극배우가 꿈다. 대사 톤, 연기에 대한 멘트 하나하나를 새겨듣는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인 학생이다. 그  K가 공연에  오지 않고 있다. 다행히 '가고 있는 중이에요'라는 K의 사정을 전해듣고 공연시간을 30분 늦췄다.  하지만 K는 공연 마지막 장면이 시작될 때쯤에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장에 도착했다.


장덕배  다음 달엔 그 집을 털러 갈게.

유화이  (가슴이 벅찬 채 달려들며) 야, 이 도둑놈아!!!


공연의 마지막 대사가 끝났을 때 K는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잠시 후 K의 어깨가 여리게 불규칙적으로 들썩였다. 바특한 언덕을 (내 경험상 거의 모든 학교는 정문을 지나면 언덕이다. 도대체 왜?) 내달려 가쁜 숨을 고르요란스러운 들썩임은 아니었다. 흐느끼는 사람의 조용한 들썩임이었다. 학생들은 관객들이 전해준 장미 한 송이씩을 저마다 들고 봄빛처럼 환하게 웃느라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K는 공연이 끝난 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남아있는 장미 한 송이를 K에게 건넸다. 어쩔 줄 몰라하는 K에게 나는 '괜찮아! 괜찮아! 잘 끝났어'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몇 번 정박자를 세듯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돌이켜보면 괜찮아는 K의 슬픔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무사히 공연이 끝나서 다행이야라는 나를 향한 안도의 말이었다. K의 공백을 대신한 B가 티 안 나게 연기를 잘해 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그래서 '나'란 사람의 수업 발표회가 흠없이 끝나서 다행인 나를 향한 괜찮음이었다.


K가 늦은 이유는 이랬다.  발표회 날이 고3 모의고사 날이라 했다. K의 학교는 시내 외곽이라 우리 학교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모의고사 때문에 수업이 늦게 끝나서 버스를 놓쳤다고. 하필 다음에 온 버스도 제 시간을 한참 지나 도착했다고. 택시를 타면 애면글면할 일도 없었을 테지만 2만 원이 넘는 택시비는 없거나 부족했을 것이다. 안절부절 마음 졸이며  버스가 오는 방향에 고개를 길게 빼두고 눈길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서도 빨간 신호등마다 멈춰서는 사소하고 절묘한 불운에 바싹바싹 침이 말랐을 것이다. 겨우 도착한 우리 학교 정문에서 올려다본 가파른 언덕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늦기 위해 언덕을 흠뻑 뛰어올라왔을 것이다. 억세진 숨이 폐를 훑을 때도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공연장 문 손잡이를 한참이나 만지작 거렸을 것이다. 지금에야 비로소  K의 슬픔을 들여다본다.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당신에게 괜찮아! 괜찮아!라고 그저 그런 시답지 않은 말만 주절거렸다. 당신과 같은 중력으로 슬픔을 느낄 수는 없을 테지만 괜찮아 보다 더 괜찮은 말 한마디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왜 당신이 되지 못하고 나밖에 되지 못했을까? 당신을 위로하는 말 한마디 찾아내지 못했던 건 당신의 슬픔이 나는 아프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고백한다. K의 슬픔을 들여다본다.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기 전에 먼저 (슬픔을)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물론 슬픔이라는 말을 지우고 그 자리에 기쁨을 넣어도 뜻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커다란 발견 인양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사람으로서 한없이 작은 일이다. 처음에는 연극수업에 관한 내 자랑을 좀 쓰려고 했다. 쓰다 보니 마음 앓던 K의 슬픔이 보였다. 생각 끝에 연극 수업에 관한 몇 단락의 글들은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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