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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Jul 29. 2021

당신에게 묻지 않는 말

동갑내기 Y를 기억하며

그 녀석을 만난 것은 지리산 뱀사골 산장,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휴가철이 지난 산장은 사르락 사르락 떡갈나무 잎이 흔들리는 소리만 그득했다. 녀석은 산장 간이매점에서 눈썹에 주름까지 지으며 꽤나 진지하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흘깃 넘겨본 신문 기사는 봄 가뭄 해갈에 관한 기사였다.  계절을 훌쩍 넘긴 오래 비 소식을 몰두해 읽는 녀석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던가 지독히 지루하던가 둘 중 하나였으리라. 듬성듬성 성의 없이 기른 수염, 홑겹의 눈, 수북한 눈두덩이에 눌려 반쯤만 드러난 눈동자 게다가 정체모를 민머리까지 첫인상은 꽤나 더러웠다. 녀석은 짝짝이 슬리퍼를 끌고 침상을 배정해주면서 침낭 대여가 필요한 지를 물었고 야간 소등시간을 알려주었다. 더러운 첫인상과 달리 녀석은 공손했고 심지어 조심스러웠다. 두어 번 지리산 종주를 해 본 터라 악착같이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볼 필요도 없었고 종주만을 위해 시간에 맞춰 출발하고 목표지점을 통과하는 건 나의 여행과 맞지 않았다. 일주일의 휴가 중 산장에서 5일을 머무르는 동안 해먹에 앉아 오고 가는 등산객을 구경하거나 길게 자란 발톱을 깎으며 보냈다.


-워매~ 그 나이에 혼자 여행을 왔습니까? (녀석은 군대식 다나까 말투를 전라도 사투리에 섞어 말했다)  

  

산장에 머무는 동안 녀석과 나는 동갑이란 걸 알고 나서 반말도 간간히 할 정도로 조금 친해졌다. 떠나기 전날 녀석이 담갔다는 마가목 열매 술을 등산객이 주고 간 꽁치통조림과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녀석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목수를 따라다녔다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목수는 내장 목수와 외장 목수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녀석의 고향이 순창이라 했을 때 나는 아! 고추장이라며 응수했다. 녀석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몇 번 삼키다가 슬그머니 물었다.


-너, 여기서 왜 있는 거야? 목수였다면서.

-아... 그게 집이.. 좀 그래... 어머니가 좀 아프셔... 근데 그게 좀..


녀석이 간간히 들려준 이야기를 이어 붙이고서야 녀석의 어머니가 무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속사정을 털어놓은 녀석도 정말 궁금한 게 있다며  단어 하나의 뜻을 물었다. 내겐 너무 익숙해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말이였고 녀석에게는 '초라한'이거나 '참담'이라고 번역됐을지도 모를 그 말의 뜻을 녀석은 물었다.


-저기... 가끔씩 산에 사람들이 와서 지들끼리 학번... 학번 하던데 거 학번이란 게 뭐다냐?

-아~그거 대학교 들어간 년도를 말하는 거야. 97년도에 들어갔으면 97학번 뭐 그런식이지. 나이가 궁금 할  때  보통 그렇게 많이들 물어봐.

-아 그랴~ 근디 뭐다러 그런다냐? 그냥 몇 살이냐고 물으믄 되는디..


'학번'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는 녀석의 질문은 나를 따끔따끔 찔렀다. 내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을 때 녀석은 함바집에서 몸을 수그리고 밥을 허물어 먹었을 것이다. 내가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 녀석은 노을 같은 알전구를 켜고 합판에 타카핀을 박았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본 적이 있다. 내가 산장 앞 해먹에서 볕바라기를 할 때 녀석은 산장에서 쓸 제 몸피의 반을 넘는 프로판 가스통을 지고 올라오는 것을 말이다. 그때 나는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같은 오래 전 유행가 가사로 동갑내기가 짊어진 무게를 겨우 짐작했을 뿐이다.


'말' 하나 때문에 밀침을 당하고 혼자 의기소침해진 적 있는 당신이라면 '말'이 찌르는 칼에 흉 진 상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선천성 내사시 수술을 너무 늦게 한 탓에 한쪽 눈이 실명됐다. 젊은 날엔 수술비가 비싸서 나이가 들어서는 다 늙어서란 이유로 수술을 미뤘기 때문이다. 한동안 사시를 비하하는 '사팔뜨기'란 단어는 나와 엄마를 향한 손가락질 같은 거였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 유독 많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면서 '엄마한테 꼭 보여드려야 돼'라고 무심코 말하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부모 모두가 계셔야 '정상' 가정이라는 편견에 덴 물집을 '엄마'라는 말로 터뜨리다니... 나는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초. 중. 고. 대로 연결되는 학력의 단계가 수. 금. 지. 화로 연결되는 행성의 순서처럼 당연한 질서인 줄 알았다. 녀석이 '학번'이란 말 뜻을 물었을 때야 뒤늦게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몇 학번이세요?'를 묻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저리 가!라고 밀쳐내는 무언의 편가르기였다는 것을... 나는 녀석을 만난 이후로 나와 약속했다.'학번' 들먹이며 당신을 궁금해하지 않겠다고.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건 이듬해 설 연휴에 산장에 머물 때였다. 녀석은 산장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연휴 말미에 나는 녀석과 같이 산을 내려왔다. 남원에 가서 추어탕이나 먹고 헤어지자는 녀석에게 추어탕은 징그러워서 먹어본 적 없다고 했다. 녀석은 알았다며 남원역 근처 어딘가의 식당으로 데려갔다. '여기 국 두개요'가 주문의 전부였던 식당에서 나는 걸쭉한 시래기 토장국을 바닥까지 보이며 참 맛나게 먹었다. 가게를 나오다 식당 유리창의 메뉴를 보고나서야 토장국이 정체를 알았다. 겨울의 무뉘 위에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던 붉은 글씨. 추어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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