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심심 소읍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 Aug 11. 2021

여름 방학, 굿 바이~

나는 매해 방학마다 방과후 수업이나 연수 때문에 방학 없는 선생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 방학은 방학 며칠 전부터 유난히 들떴다. 학교 석면공사로 방과후 수업 없이 온전한 여름 방학을 보낼 수 있어서다. 엄청 호기로운 계획도 세웠다. 아침 7시에 명랑한 기분으로 일어날 것, 가끔은 새벽 운동을 하고 눅눅해진 티셔츠를 빨아 볼 것, 가능한 두껍고 무거운 책을 읽을 것, 해 저물 때 강릉 바다를 오래오래 바라볼 것, 밤을 새워 쓰고 아침에 더듬더듬 잠자리에 들 것, 중급 회계 강의를 끝장내고 재무제표를 소설처럼 읽을 것... (적고 보니 어질어질한 이 느낌은 뭐지?) 방학식날 노트북 자판 사이사이 먼지를 닦고 책상은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말끔하게 정리하며 나와 약속을 했었다지만 결국 약속들은 무참히 흩어져버렸다.


다시는 오지 않을 여름 방학이 가고 있다.

브런치에 몇 편의 글을 썼으니 '쓴다'는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미지근하게라도 지킨 것 같다. '읽는다'는 민음사 안나 카레니나 3권을 완독 하는 거였지만 겨울방학으로 미뤘다. '공부한다'는 방학 동안 회계의 숲을  보기 위해  중급회계까지 가보리라 마음먹었지만 뭐 숲 언저리에서 잡풀이나 몇 줌 뜯은 정도다.


다시는 오지 않을 여름 방학이 가고 있다.

겨울방학은 더디 올 것이다. 내가 저를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엄청 거만하게 굴면서 나를 애태우겠지. 굿바이 여름 방학~ 너와의 약속들을 불룩한 주머니에 든 구슬을 만지작 거리듯이 만져본다. 다시, 너를 만난다면 그때는 말이야 제대로 잘해낼 수 있을텐데....속상하다.


사랑과 방학과 여행은 닮았다.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지는 그런거라서. 헤헤  :D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