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나의 성장일기'라는 아이의 숙제를 봐주기 위해 오래된 사진첩을 열었다.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쁜 일과 슬픈 일을 아이 입장에서 써내는 숙제였다. 아이의 어린 시절들 사이로 잊고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여느 엄마들처럼 나 역시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 사진, 놀러 다닌 사진, 좋아했던 인테리어 사진들이 가득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한 장이라도 더 찍어서 간직하려고 헐거워진 손목에 아대를 하고서라도 사진을 찍어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사진을 봐야 기억이 나는 몹쓸 내 기억력 때문이다.
간간이 보이는 퉁퉁 부어있는 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과거의 나에게 다이어트는 생존 그 자체였다. 지금의 내 모습만 본 주변 사람들은 나의 과거를 모르니 상상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다이어트 전에 기초대사량이 1,000kcal 언저리로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초등학생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체력은 거의 80대 이상 노인이었다. 요즘 어르신들을 보면 이런 내 생각도 편견이겠지만 그 정도로 내 체력은 바닥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실제로 남편은 계속 누워있는 모습을 보곤 치매가 올까 봐 운동을 권유했다. 설거지라도 하나 하고 나면 누워야 했다. 그만큼 기운이 없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풀린다더니 사실이었나 보다. 산후조리도 남들보다 두 배로 했었는데 말이다.
과거보다 살이 찐 상태긴 했지만 다이어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남편 손에 이끌려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영영 그런 마음을 못 먹었을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예전처럼 평범하고 건강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저질 체력이라 운동은 가볍게 시작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바꿨다. 하루에 한 잔도 안 마시던 물도 마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니 기운이 났다. 마른나무에 물과 영양을 준 덕이었을까? 참 신기했다. 살이 빠진 것보다 기운이 나는 것이 제일 신기했다. 나의 생존을 위한 다이어트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어릴 땐 운동을 좋아했다.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면 늘 손등에 도장을 받았다. 재수를 할 땐 숨차게 달리는 것이 상쾌해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스피드 스케이트도 탔다. 하지만 출산 후 운동은 내 의지의 영역이 아니었다. 겨우 아이들을 챙기고 나면 누워야 했다. 쌍둥이 임신 기간에도 조산기가 있어 누워서 생활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몸이 약해 병원에 자주 입원했다. 막달 즈음에는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워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임신기간에 움직이질 못해 내 몸에 있던 근육이 모두 빠진 것이 아닐까?라고 자주 생각했다.
에너지 넘치게 놀아줘도 모자랄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다. 임신 준비할 때로 돌아간다면, 엽산만 챙겨 먹을 것이 아니라 운동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남편은 그런 내가 늘 걱정이었다. 잠을 아무리 많이 자도 늘 피곤한 모습이 걱정이었고, 늘 소파에 누워있는 것이 걱정이었다고 했다. 잠을 많이 자면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뉴스 기사를 보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남편이 연차를 낸 어느 날이었다. 함께 외식을 하고 공원 산책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출퇴근할 때 본 곳이라며 나를 운동 센터로 무작정 데리고 들어갔다. 미리 말했으면 싫다고 했을 걸 알았을까? 간단한 상담을 받았다. 남편의 마음이 전해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입금했다.
다음 날 나는 쌍둥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운동복을 챙겨서 그곳으로 향했다. 처음 운동한 날을 기억한다. 몇 분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얼굴은 불타는 것 같았다. 딱 죽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내고 싶어서 오기로 30분 운동을 마무리했다.
묘했다.
집에 누워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숨은 차고 얼굴은 뜨거웠지만 내 몸에 숨을 불어넣은 듯했다. 고작 30분 운동했을 뿐인데 말이다. 운동으로 인공호흡을 받은 느낌이었다. 매일 똑같은 날의 연속이었는데 운동 하나로 내 생활에 활력소가 생긴 것 같았다. 물론 집에 오자마자 누워버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