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클로이 Oct 22. 2024

밥 좀 마음껏 먹고 싶어요

40대 후반의 회원이었다.


남편 따라 운동을 시작했고, 유독 윗배가 볼록 나온 체형에 다리는 몸에 비해 매우 얇았다. 몸무게에 비해 근육량이 낮아 훨씬 뚱뚱해 보이는 억울한 면도 있어 보였다.


어느 날 상담을 요청해 왔다.


“선생님 저 건강검진을 했는데 당뇨 전 단계라고 하네요. 살을 좀 빼야 할 것 같아요.”


유전력이 있어 걱정이 된다는 그녀의 식습관을 며칠 동안 함께 살펴봤다. 고기보다는 밥과 나물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생각보다 적게 먹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소화가 잘 안돼서 먹고 싶어도 많이 못 먹는다고 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일반적으로 소화력은 살이 찌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경험상 소화력이 약해지는 것을 시작으로 살이 찌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소화가 안되기 시작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녀에게 일단 물을 자주 조금씩 마셔 보길 권했다. 그리고 다이어트 ‘식단’이 아닌 ‘식사’를 하되 익힌 음식들 위주로 먹고 최소 50번은 씹어 먹어보라고 했다. 워킹맘이었던 그녀는 늘 시간에 쫓겨 밥을 먹었기 때문에 어려운 도전일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소화력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먼저였다.




일주일이 채 흐르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치님 속이 너무 더부룩해요.”


“음 예상은 했지만 체하셨나 보네요. 일단 센터로 오시겠어요?”


어두운 표정의 그녀가 들어왔다.


“아마 자주 이러셨을 텐데요.”


“네 근데 다른 사람도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가지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제가 소화력이 약한 걸 상담하면서 들어서인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밥은 늘 꾸역꾸역 먹었는데 저도 밥 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까요? “


“소화력은 좋아질 수 있어요. 저도 잘 체하는 사람이라 사혈을 배웠는데, 일단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의 눈빛은 안도하는 듯하다가 사혈침을 가지고 오는 나를 보며 겁을 먹은 듯했다.


“좀 따끔하실 거예요. 하지만 속은 편안 해지실 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조심스럽게 사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큰 소리로 트림을 했다.


“아 코치님 죄송해요. 제가 트림을 잘하는 편이긴 한데 이렇게 시원한 트림은 처음이네요.”


내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내 도움이 필요했지만 점점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소화력이 좋아지자 그녀의 윗배가 조금 들어갔다. 그녀는 신기해했다. 밥을 잘 먹고 있을 뿐인데 살이 빠지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본격적으로 식단을 시작했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식단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했지만 헛트림하지 않고 밥을 마음껏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녀였다. 그런 탓에 체지방은 야금야금 빠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다음 건강검진날이 되었다. 당뇨가 걱정이었던 그녀는 체지방 10kg을 빼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도 그녀도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확신이 있었다. 내장지방이 3 레벨이나 내려갔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검진 결과가 나왔고 그녀는 다행히 당뇨약은 처방받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찌고 빠지고를 반복했지만 밥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됐다며 늘 나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헛트림을 달고 살던 그녀에겐 살이 빠진 것보다 사람답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었던 모양이었다. 행복한 그녀의 표정을 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08화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