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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May 12. 2022

동백꽃 필 무렵, 혼자가 좋아져 버렸다.

혼자 하는 여행의 시작


10년 전 1월의 어느 날.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나의 목적지는 제주. 일상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혼자 무언가를 해내고 싶기도 했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기도 했다.


제주에서 세 번의 밤을 맞이하는 동안 나는 혼자만의 여행이 내게 제법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 계획적이지 않은 이 성격을 누군가의 시간과 맞출 필요도 없었고, 일부러 아침형 인간이 될 필요도 없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던 둘째 날, 그래도 한 겨울 제주에 갔으니 제대로 동백꽃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가득한 관광지는 피하고 싶어 이리저리 찾던 중, 당시 조금씩 입소문을 타던 위미리를 알게 됐다. 제대로 동백꽃을 봤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새파란 하늘, 싱그러운 잎사귀, 새빨간 꽃잎에 대비되는 까만 돌담까지. 그 완벽한 색감은 겨울이 단지 쓸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 넓지 않은 동백꽃 군락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눈에 담느라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새로운 겨울을 내게 보여준 그곳을 그냥 떠나기엔 아쉬워 주변을 걷기 시작했고, 골목의 끝에서 우연히 한 카페를 발견했다. 그 카페 한편에는 제주의 돌담 속 화려하고 아늑한 그 겨울을 사진처럼 보여주는 큰 창이 있었다. 그 창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한 잔과 가방 속에서 꺼낸 책까지 온전히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줬고, 완벽한 휴식의 시간을 내게 주었다. 원래의 계획(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이 바다를 보러 가려고 했던)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평온한 그 시간 속에서 문득 '행복이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져 버린 돌담 속 동백 꽃송이 하나는 이게 행복이라고, 혼자 하는 여행도 괜찮다고, 잘 왔다고 나를 도닥여줬다.


'겨울', '혼자'라는 단어가 주는 쓸쓸함을 동백꽃이 모두 지워준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좋아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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