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omile'에 대한 표기법은 현재 심의된 바 없다고 한다. 영어 표기법에 따르면 '캐머마일'로 써야 하지만 익숙한 표기인 '캐모마일'로 작성했다.
새해를 맞이하고 갑작스레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정말 계획한 게 아무것도 없는 여행이었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였다. 덕분에 하늘은 화창하고 공기는 깨끗했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은 막을 길이 없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겨울바다는 그간 지친 마음을 달래는데 꽤 효과적이었다. 기분 좋지만 아쉬운 1박을 마무리하려는데 하루 종일 차디찬 바람을 쐬어서 인지 한 번 시작된 기침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고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니 안심해도 된다.
평소에도 기관지나 편도, 목과 관련된 기관이 약해서 고생을 하곤 하는데 가져온 약을 먹어도 곧바로 그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다. 한참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숙소에 마련되어 있는 허브티들이 눈에 들어왔다. 꽤 여러 종류의 차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딱 한 가지는 자신 있게 알아챌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캐모마일'이었다. 생김새를 보나 향을 보나 구분이 가능한 것은 캐모마일 뿐이었는데, 사실 그전까지 캐모마일은 항상 나의 선택밖에 있던 차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카페에 가면 캐모마일보다는 다른 차를 마시곤 했다. 잠을 잘 자지 못해 그간 추천도 많이 받고, 선물도 받아본 차였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인지 망설임 없이 물을 끓이고 캐모마일 티백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딱히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부터 ‘내가 이걸 왜 좋아하지 않았을까.’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것. 내게는 캐모마일 차가 바로 '그런 것'이다.
머그컵에 티백을 걸어두고 뜨거운 물을 부으니 그동안 내가 기억하고 있던 캐모마일의 향보다 훨씬 좋은 향이 났다. 향을 맡으면 조금 씁쓸할 것도 같지만 향긋한 내음이 함께 나서 꽤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향. 어느 정도 우러났을 때 조심스럽게 한 모금, 한 모금씩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하루 종일 맞은 바닷바람에 고생한 몸이 이제야 제대로 녹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즐기다 보니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기침은 멎어 있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동안 마시지 않았던 캐모마일을 다 마시는 것 마냥 근래 '최애 티'가 되어버렸다. 사실 어떤 카페를 가도 캐모마일은 거의 구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캐모마일은 나의 의사로 골라본 적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나는 그게 의문이다.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는 거 같다. 나는 이 친구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 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나눠 본 대화에 너무나 잘 맞는다는 걸 발견하기도 하고. 이런 음식은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만 하다가 막상 먹어보니 너무 내 취향이기도 하고. 친구를 따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의외의 적성을 발견해 직업이 되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이런 순간은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은 아마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선입견 때문이지 않을까?
선입견을 갖는다는 건 그 무언가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도. 그래서 최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또 마음만큼 되진 않는 것 같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게 좋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내게 향긋한 캐모마일 차 한 잔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다. 가끔은 낯선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거, 의외의 재미와 신선한 경험이 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캐모마일차 한 잔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캐모마일을 검색해 보면, "땅에서 나는 사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허브. 유럽, 북아프리카, 북아시아가 원산지이며 달콤하고 상쾌한 사과향을 지니고 있어 차로 즐기거나 목욕, 미용, 습포 등에 이용한다. 방충, 진정, 진경, 진통, 발한, 소화촉진, 피로 해소 등에 효과가 있다."라고 한다. 슬쩍 검색해 봤을 뿐인데 정말 많은 효능을 갖고 있었다.
캐모마일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주로 알려진 것은 저먼 캐모마일, 로만 캐모마일이다. 두 종은 비슷한 약효를 가지고 있지만 저먼 캐모마일이 쓴맛이 덜해 많이 쓰인다고 한다. 대신 저먼 캐모마일보다 향이 강한 로만 캐모마일은 정원이나 길가에 심는 식물로 자주 이용된다고.
익숙한 만큼 캐모마일은 허브티 중에서도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캐모마일을 귀하게 여겨 태양의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또 동화 <피터 래빗>에서는 배탈이 난 피터 래빗에게 엄마가 캐모마일 티를 끓여 먹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굉장히 익숙한 허브티인 만큼 ‘캐모마일의 효능’이라고 검색하면 정말 다양한 페이지를 볼 수 있는데 가장 익숙한 효능은 바로 감기 예방인 것 같다. 유럽 사람들은 감기나 두통, 피로감이 있을 때 캐모마일 차를 애용한다고 하는데 캐모마일의 진정 작용 때문에 몸이 따뜻해지고 긴장이 누그러져서 두통에 효과가 있다고. 그리고 이 캐모마일은 여성들에게 참 좋은 차라고 한다. 생리통 감소,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또 불면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기로 유명한데 많은 연구자들은 캐모마일 차가 불면을 줄이고 수면을 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 기침이 나던 밤에 내가 캐모마일을 선택한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었는데, 인후통, 기침, 객담 분비를 진정시키는 효과도 갖고 있다고.
▶ 커피빈의 '레몬 캐모마일'
작은 레몬 한 조각으로 캐모마일의 향이 확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레몬은 티백을 꺼낼 때 함께 꺼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레몬의 향이 캐모마일 향을 모두 덮을 만큼 강하게 느껴졌는데, 그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쉽게 어쩌면 정말 흔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 바로 캐모마일인데, 그럼에도 이 작은 한 잔에는 꽤 많은 효능이 들어 있어서 정말 놀라웠다. 너무 흔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간 지난 세월들이 아쉬울 만큼.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잔 한잔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혹시 "캐모마일이 딱히 좋은 줄 모르겠어."라고 생각해왔다면 다시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우연한 기회에 한 잔 마셨던 캐모마일 차에 흠뻑 빠져있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특히 잦은 두통이나 불면증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천천히, 달큰한 캐모마일 향과 함께 따뜻하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 대상은 굳이 캐모마일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선입견의 대상이 있다면 은근슬쩍 그런 적 없다는 듯 다가서 보는 거다. 의외로 괜찮고 의외로 잘 맞을지도 모르니까. 나도 캐모마일이 아닌 또 다른 선입견은 없는지 일상 속에서 또 한 번 찾아봐야겠다. 이런 사소한 선입견을 또 발견하게 되면 기분 좋게 웃으며 넘길 수 있길 바라면서.
이제 정말 눈앞에 봄이 다가온 느낌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정신없이 힘든 일 가득했던 이번 겨울이지만 어쨌든 봄은 다시 돌아왔으니까. 다시 돌아온 봄을 느끼면서 오늘은 편안하게 캐모마일을 한 잔 마셔야겠다.
'차분(茶分)한 시간, 보리차'는 보리차처럼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차와 함께 하는 일상과 추억, 더불어 차의 효능과 역사 등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이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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