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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읖 Feb 05. 2021

[차분(茶分)한 시간, 보리차] 22. 페퍼민트

시원한 향이 매력적인 페퍼민트 차 한 잔

제법 괜찮은 연말과 연초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예상하지 못했던 일 하나는 저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라 현실감도 없고, 그 충격도 꽤 컸어요. 좋은 일이 가득하다고 너무 안심했던 걸까요? 역시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겠죠?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저는 제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제 몫을 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더라고요. 일신상의 이유를 핑계로 내세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내 문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조차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고민이나 힘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털어놓지 못하는 성격도 한몫했겠죠. 다행인지 이런 성격 탓에 제법 의연하게 버틸 수 있긴 했지만 그렇게 버티는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나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평소 스트레스에 그리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논문학기를 보내며 만성 위장염을 얻게 됐거든요. 하지만 사회도 녹록지는 않아서 이 증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잠시 잊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종종 스스로 인지하든 아니든 어떤 형태로든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나면 꼭 탈이 나곤 합니다. 요즘은 입맛도 없고, 배고 고프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떡볶이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며 ‘내가 진짜 아프긴 하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살아야 하니 아주 안 먹을 수는 없는데 뭘 먹어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속이 아프다거나 더부룩하다거나.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먹는 게 오히려 더 괴로운 순간이 있다니. 결국 저는 의자에서 일어나 따뜻한 페퍼민트 차 한잔을 끓였습니다. 시원한 그 향에 이 걱정과 고민도 함께 날아가버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특유의 시원한 향이 매력적인 페퍼민트는 가장 익숙한 허브 중 하나입니다. 차가 아닌 것으로는 치약이나 껌 등에서 페퍼민트 향을 만났던 게 떠오르기도 하는데, 사실 특유의 그 향을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차로 접하게 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페퍼민트는 꿀풀과 박하 속의 다년초입니다. 민트의 종류가 굉장히 많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이 스피어민트와 페퍼민트인데, 페퍼민트는 사실 스피어민트와 워터민트를 교잡해 만든 품종이라고 합니다. 민트 자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조리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랜 역시를 가지고 있는데, 히포크라테스가 약용으로 사용하면서 중세 이후의 서양에서는 소화불량, 진통제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페퍼민트는 멘톨, 플라보노이드, 탄닌, 민트 폴리페놀 등의 성분이 주를 이루는데 특유의 청량감은 멘톨 성분에 의한 것입니다. 페퍼민트를 차로 우려 마시면 과식이나 과음으로부터 오는 불쾌감이나 멀미,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소화를 돕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가슴 쓰라림이나 위경련의 증상을 완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정 효과를 가지고 있어 신경의 흥분을 억제하고 긴장을 누그러뜨리며 두통과 초조, 불안감 등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민트 폴리페놀 성분은 코 점막의 염증을 제거해 화분증 등의 알레르기 증상이나 코 막힘 등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다만 임신 중이거나 소아, 고혈압 환자, 당뇨병 환자 등은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해요. 또 과민성 장염이나 대장염 등을 앓고 있는 사람의 경우 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페퍼민트의 효과 때문에 설사 등의 증상이 심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에게 ‘평정심’에 대한 욕심이 좀 있어요. 평소에 좀 까칠한 성격이다 보니 그런 모습을 언제든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좀 갖고 있는데, 간혹 이번처럼 무언가 송두리째 흔들릴 만한 일을 만나면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제법 단단히 잘 버티는 제 자신이 대견하기도 한데,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답답한 속과 마음에 페퍼민트 차 한 잔이 위안이 될 수 있어 다행인 것 같아요. 혹시 저처럼 답답한 일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페퍼민트 차 특유의 청량한 향을 느껴보시는 건 어떠세요?






'차분(茶分) 한 시간, 보리차'는 보리차처럼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차와 함께 하는 일상과 추억, 더불어 차의 효능과 역사 등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이 주제입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팟캐스트로도 함께 해 주세요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381/clips/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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