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 맞이한 비대면 시대, 또 다른 부캐를 찾다.
언택트 시대, 새 부하직원을 비대면으로 맞이했다.
육아휴직 중 맞이한 비대면 시대, 또 다른 부캐를 찾다.
여름이 끝나가고 코로나는 여전하다. 올해 초 시작될때 까지만 해도 감기같은거니 금방 없어지겠지. 기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가 죽겠지 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너무나 안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상이 마비되고 도시가 조용해졌다. 지금은 수도권이 사회적거리두기 2.5단계 시행중이지만 이 말은 우리 나라 지역구 모두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새벽배송 업체들은 주문폭주에 재고가 바닥이되고, 배달대행 업체들은 수수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배달을 하지 않는 자영업자들의 우는소리, 올해가 너무 아쉬운 입학생, 졸업생, 수험생 그리고 모든 국민들. 아기가 태어날때가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 유행하는 봄이었는데 이 때만 지나면 하반기에는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제2의 유행이 시작됐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앞으로 3-5년 혹은 10년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육아휴직 중 같은 팀원이 퇴사를 했다. (A라고 하겠다) 이유인 즉슨, 직장인이 공감하는 수만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예를 들면 대표와의 갈등과 폭언 혹은 그것들을 꾹꾹 담아 견디지 않고 새길을 찾아떠나는 90년생의 패기 같은 것들) A가 이야기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부재였다고 했다. 항상 내 오더를 받아 일을 하던 A는 갑자기 대표의 오더를 1:1로 받다보니 그동안은 몰랐던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고 했다. A는 중간관리자 없이 혼자 매맞듯 대표의 수많은 주문을 쳐내다 보니 온 몸이 탈골될 지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본 A는 많이 지쳐보이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요" 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A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고작 마주보며 니 마음 이해한다 하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 동정의 눈빛 뿐이었다. 그 어떤 말도 나는 정확하게 또 자로잰듯 명확한 답을 내려줄 수 없었다. 나의 육아휴직은 그때 3개월 차였고, 아직 1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남았기 때문에 A에게 내가 갈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라는 위로나 '그래 잘 생각했어' 라는 조언같은 건 할 수 없었다. 그저 A에게 더 좋은 표현을 해줄 수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위치에 조금 미안해할 뿐이었다. 그리고 A는 한 여름에 퇴사를 했다.
A가 퇴사하는 날 흔한 퇴사주는 커녕, 나와 대면해서 인사도 못하고 퇴사했다. 회사에서도 변해버린 시대에 쓴 소주를 사주는 상사는 없었고, 나와 A의 헤어짐은 완전 비대면이었다. 나는 내 SNS계정에 그녀가 처음 입사해서 같이 했었던 업무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했었던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짧게 이미지와 영상으로 업로드 했는데 그녀가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파노라마 처럼 지나가는 그때의 너와 내 모습에 나도 참 즐거웠고 또 서운했으니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안타까웠다. 어린 아기를 케어하고 있는 그리고 퍼질일만 남은 바이러스 이 두가지 상황 때문에 인사까지 비대면으로 하게 될 줄이야.
육아휴직 중에도 일의 감각을 잃기 싫어서 부단히 노력했다. A에게 업무보고서를 매일 받으며 피드백 하기도 했고 작은 이슈에도 반응하며 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초반 3개월은 일부러 힘을 주고 했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전지적 시점에서 회사를 보게 된다. 전지적 참견시점. 그때 서서히 힘을 빼게 되면서 알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팀장이지만 지금 현재는 아직 초보 엄마일 뿐인 사람이다. 회사에 매일 참견하고 있는 육아휴직 중인 발언권 없는 휴직직원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A의 인계를 받아 새로운 직원이 입사했다. (B라고 하겠다.) 그녀는 나의 직속 부하직원이지만 그녀도 나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나 역시 그녀를 보지 않았다.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런 방식의 비대면으로 새로운 직원을 맞이할 줄이야.
'카톡'
B에게서 카톡이 왔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신입 B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조금 전에 메일로 일일 업무보고서 보냈습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강이 제대로 서 있는 누가 봐도 신입사원의 메세지다. 나는 서둘러 프로필사진을 변경했다. B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건 프로필사진 밖에 없으니... 보자보자. '이게 좋겠다.' 나는 최대한 날씬하고 멋지게 나온 사진으로 그리고 배경은 유럽,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있는 키가 크게 나온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난 B에게 어느 정도 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애매한 언택트 상황에 말하지 않아도 또 내 소개를 굳이 하지 않아도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심플하고 담백한 방법이었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 나는 새 부하직원까지 이렇게 비대면으로 맞이했다. 언택트 시대에 상황별 경험률과 만족도는 다 다르겠지만 오래된 사람을 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고 하는 방법도 이제는 이렇게 잘 나온 프로필 사진 한장의 인증과 '카톡'의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입니다. 하는 짧은 메세지로도 가능하다. 굳이 마주보고 앉아서 눈을 흘겨 보지 않아도, 주고 받는 이야기에 섞인 성격을 드러내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 등의 비언어적인 행동들로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심플함이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나는 아직 한창 육아휴직 중인 휴직직원이라 회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와 일어나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비대면으로 만난 B와의 관계에서 내 위치가 애매해 지기 마련인데 B는 A에게 인계받은 대로 업무보고서를 나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요즘 회사의 가장 큰 이슈는 대표와 독특한 관계의 어떤 이가 입사했다는 것이다. (C라고 하겠다) 휴직후에도 들려오는 C의 소식은 전지적 시점에서 회사를 보는 나에게 흥미로운 소문이다.
회사에서는 매주 화요일 마다 대표와 회의를 한다. 그리고 C도 어느날 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회의 자리에서 대표가 B에게 나에게 보내는 업무보고서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C의 입김 작용이다. 뭐가 그렇게 불편해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휴직직원에게 업무보고서를 보낼 필요가 있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휴직후에도 회사의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기를 봐가면서 새벽에는 A가 보내놓은 업무보고서를 보고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최근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이런 것들이 있구나 체크하며 도움될 것들이 없는지 서치하고 같이 찾아봤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많이 내려놨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C가 도와준 셈이 됐다.
효용과 실용성을 중요시 하는 회사에서 육아휴직간 직원, 거기다 여직원에게 회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하는 일은 회사입장에선 어찌보면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거다. 하지만 사실인 육아휴직 중인 직원, 그리고 '복귀 안할 수도 있지 않냐' 하는 그들의 마음의 소리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회사와 대면하지 않는 비대면 휴직직원이다. 철저하게 회사의 생각과 마음의 소리에 있어서 언택트 중이다. 복귀가 아직 많이 남은 오늘 언택트 시대가 지금 나에게는 오히려 실용적이고 안정적이다. 또 새로운 기회다. 이미 몇년 전부터 비대면의 시대로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었고, 육아휴직을 썼던 시점인 코로나19 초기 이후 급속도로 우리는 비접촉 생활방식의 다양한 플랫폼을 접하면서 이 시대를 더이상 겉잡을 수 없는 해일처럼 살아가고 있다.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이 물살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금방 도태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자가 되는 오늘 우리 현실에서 지금 비대면 시대가 주는 기회는 무한히 가능성 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언택트 시대의 플랫폼을 다양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이 승자다.
육아휴직 중인 나에게는 최소한의 어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리고 수면 위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언택트 시대로 인해 복귀 시점에 생각지도 못한 여러 제약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 오히려 파도의 흐름을 잘 타 복귀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달라진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언택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의 위치가 팀장일뿐, 회사 밖에 있는 나는 삼십대 육아맘 이라는 현실을 새롭게 알려줬다. 휴직 후 맞이한 언택트 시대, 나는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고 또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까지 많은 고민과 플랜이 필요하다.
내가 누군지 말 해야 할 때 '이 곳의 팀장입니다'와 같이 어딘가 소속되어 있는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어떤 플랫폼을 잘 쓰는 혹은 만드는, 또 충분히 그 속에서 잘 놀고 있는, 기획자로 나를 소개하고 싶다. 본캐는 10년차 프로직장러 이지만, 부캐는 엄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언택트의 파도를 타고 또 다른 부캐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