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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Oct 13. 2020

신혼시절, 그리고 부부의 세계

결혼은 미친짓일까 아닐까?

곧 결혼 4주년이다.


신혼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농도 있는, 그렇다고 신혼이지 않다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남편과 나. 그리고 올해 태어난 아기까지. 우리는 그렇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단계적으로 접근중이다.

요즘은 남편의 습관과 행동에 많이 흡수되었다. 서서히 인정하고 서로 물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는 편이다. 어차피 앞으로 몇 십년은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신혼 1년차때 물고 늘어졌던 잔소리를 키워 아직까지 하고 있다면 난 잔소리계의 명창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연예인이 있다. 그 말은 우리 같은 부부사이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관계에 해당되는 말이다.


조언은 상대를 위해 하는 말이고,
잔소리는 나를 위해 하는 말이다.


결국엔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서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어서 하는 소리가 잔소리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마음은 처음부터 잔소리 보다는 사랑스러운 소리를 더 많이 해주고 싶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이었지만 상대가 그렇게 듣지 못했다면 그건 잔소리일뿐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나의 사랑한다는 말을 잔소리로 들을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것 1.

남편과 같이 산지 일주일 째. 남편은 TV프로그램을 엄청 좋아하는 남자였다.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같이 살면서 알게된 특별한 이면이 생소했다. 이 사람이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과 '그것이 알고 싶다.' 이다. 남편 뿐만 아니라 많은 매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토요일은 무한도전을 봐야 하기 때문에 외출을 할 수 없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봐야 하기 때문에 일찍 들어와야 하는 그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봤던 걸 또 보고 또 본다.  


이해할 수 없는 것 2.

퇴근 후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잠이든다. TV보다가 거실에서 잠들 거 어서 씻고 편안하게 침실에서 숙면을 취하면 좋을 텐데. 왜 안보는 TV를 틀어놓고 거실에서 코골고 졸면서 보고 있는건지. 코고는 소리를 듣고 내가 TV를 끄면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럴 땐 신경질이 확 난다. 남편은 나에게 또 잔소리냐고 소리꾼! 이라고 하면서 리모콘을 확 빼앗아 간다.


이해할 수 없는 것3.

나는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선 대부분 노트북을 하고 다이어리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남편은 웃고 떠드는 예능프로그램을 좋아한다. TV성향 자체도 맞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 취향도 조금씩 다르다. 나는 집에서 TV를 거의 보지 않지만 남편은 집에 있으면 일단 TV를 켜고 난 후에 활동을 시작한다.



결혼 하면 치약 짜는 방향때문에
싸운다던데 너희도 그래?



오히려 치약 짜는 방향 같이 단순한 사건이라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생활 방식에서 조금씩 틀어진다. 신혼 1년차 때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식과 같은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에서 서로 너무 다른걸 느꼈다.





지금 돌아보면 이게 정말 충돌할 문제였을까.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의 삶의 형태와 TV를 보면서 핸드폰을 하고 졸기도 하는 남편의 삶의 형태. 결국엔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를 종료하고 충전하는 방식이었다.

신혼 1년차때는 이런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남자친구가 아닌 남편이 된 이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연애 때 보다는 조금 더 다른 스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결혼 4년.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는 이런 걸까?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아는 부부 사이가 되었다. 수많은 이해와 인정을 하면서 모난 마음이 닳고 닳아 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기 까지 왔겠지만 기술적인 연습과 두번 세번 노력하는 이해만이 우리를 만든건 아니다.

혼자 사는 시간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삶을 겪어본 부부의 내공은 구체적이고 조화롭다. 그리고 지금 관계는 우리 상호간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부부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하고 섬세한 관계다. 정말 친한 친구 앞에서도 하지 않는 행동을 부부간에는 비밀 없이 공유하기도 하고, 둘만의 사랑의 밀어가 생기기도 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행동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떤 당연함이 부부 사이를 더 끈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랑과 애정, 그리고 우정 같은 것들로 부부의 세계는 끈끈하게 또 끊어지지 않게 엮여 있다.


단순한 일로 정말 열정적으로 싸웠던 그때의 당신과 나를 생각해보니 항상 싸움을 건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부부의 세계에서 꼭 져주는 사람과 기여코 이기고자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내가 운전대를 잡을때 마다 조수석에 앉아서 나를 기다려줬던 당신 4년이 지나도 마음이 변함 없어서 고맙다. 부부가 해주는 위로는 진짜 위로가 된다.


그렇다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의 언어들로 그의 귀를 쉬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신혼 1년차의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다. 그 진하기의 농도는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다. 부부의 세계는 부부만이 알 수 있고, 그것은 정말 특별한 인연이다.


이쯤 되면 결혼이 미친짓인지 아닌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하건데 하기 나름이다.







결혼은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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