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고 난 다음에서야 아쉬워하는 그때 그 순간
결혼 3년 차, 계획 임신을 시도 한지 몇 개월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장소로 이동 중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추위가 많이 느껴지고 배가 시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이번엔 임신 아니야?' 하는 느낌은 많았지만 4,000원짜리 임테기만 몇십 개 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대한 기대를 낮추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싸한 느낌은 모임 장소에서도 이어졌다. 이런 게 바로 임신 촉 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임신 확신 느낌이라는 걸까. 왠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기대해 보고 싶은 불확실한 감정 때문에 오늘이 아니면 마시지 못할 것 같아 맥주도 한 캔 마시고, 새벽까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임신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열심히 놀았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이상한 한기와 그놈의 '느낌 적인 느낌' 때문에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다. 그 동안 테스트기 후 기다리는 3-4분의 시간은 정말 길었다.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실눈 뜨며 최대한 팔을 뻗어 테스트기를 두 손으로 잡고 서서히 내 눈 쪽으로 돌려가며, 두 줄인지 한 줄인지 확인하던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정확한 한 줄로 '너 임신 아니야' 하고 확인시켜주던 분홍색 플라스틱 막대기 하나에 감정이 왔다 갔다 했었다.
이번에는 뭐가 그렇게 확신에 찼을까 정확히 3분을 기다린 후 희미하게 피어나는 빨간색 장미꽃 같은 두 줄을 보았다. 한 번 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정확한 두 줄이다.
임신이다.
그렇게 9개월 만에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는 빨간 장미꽃처럼 진하고 아름답게 나에게 왔다.
그래도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다음 날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항상 나의 입방정은 한 줄 결과를 가져왔고 그래서 그런지 이번엔 더 아끼게 되고 조심스러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꼭 지키고 싶었다.
"어.. 검사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는데..."
"아 임신테스트기 했는데, 두 줄 나와서 확인차 한 번 해보려고요!"
"축하합니다. 임신이네요!"
엄마의 음력 생일에 맞춰 찾아온 나의 아기. 그리고 그 주 주말 친정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친정 부모님께 먼저 보여드렸다. 입은 귀에 걸려있지만 아직 확실치 않으니 초음파까지 해보고 다시 말해달라며 나를 진정시키는 부모님의 잔잔한 어조에 리듬이 있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밥은 거의 못 먹었고 니글거리는 속은 물론 잦은 속쓰림과 골이 흔들리는 것 같은 엄청 고통스러운 두통으로 유난스럽게 입덧을 시작했다. 당기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고, 조금만 먹어도 체한 것 같은 느낌으로 음식과의 안녕을 고했다.
회사에는 최대한 늦게 알렸다. 임산부 단축근무 신청을 해야 해서 임신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알릴 수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임산부 단축근무의 제일 첫 스타트가 나였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여자 직원 그리고 임신을 한 여자 직원을 바라보는 회사의 입장은 아무래도 아주 조금은 다를 테니까. 임산부 단축근무로 인해서 오후 3시에 퇴근을 했지만 퇴근해서 뭐하지 하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에 도착하면 속쓰림에 못 이겨 가슴을 부여 잡고 괴로워했다. 물을 조금만 마셔도 속이 좋지 않으니 무조건 자는 방법밖에 없었다. 내 임신 단축근무 후의 생활은 그렇게 속쓰림과 잦은 두통 그리고 잠으로 보냈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자동차 등록증을 받아 차에 부착을 하고, 무료로 나눠주는 철분제도 받았다. 그리고 임산부만 사용할 수 있는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아 병원비의 부담을 아주 조금 덜었다.
남편과 나는 사실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임신하고 나서도 정말 바라던 일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고, 내가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뿐더러 적응도 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 혹시나 회사에서 '임신해서 저렇다' '임신하고 나니 일이 소홀하네' 하는 말을 들을까 타이트한 업무복을 임신 8개월까지 입으며 티 나지 않게 그리고 티 내지 않고 일했다.
임신하고 나서도 일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었고, 더 나서고 한 발 물러서지 않았다. 물건을 옮기거나 어떤 행사를 준비할 때도 여전히 적극적이었고 그런 태도 때문에 내가 임신한 줄 몰랐던 회사 직원이 엄청 많았다.
어느 날 회사에 자식 셋을 키우고 계신 실장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해줄 얘기가 있다고 하셨다.
요즘은 그래도 세상이 변했어.
나 때만 하더라도 회사에서 임신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국가적으로도 그리고
회사 내에서도 복지가 좋잖아.
지금 본인이 임신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곧 엄마가 될 거라는 기대감을 많이 가지고 티를 좀 많이 냈으면 좋겠어
"그러고 싶은데, 아직은 시선이 좀 그래서요..."
"아기들도 엄마가 스트레스받는 것 다 느끼고, 김 팀장이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해. 이건 정말 분명해. 조금 더 많이 내려놓고 너무 일만 잡고 있지 말고 임산부의 모습을 좀 많이 드러냈으면 좋겠어"
몇 분간의 대화, 그 실장님이 바라보는 나는 의무적으로 책임감을 다하려고 했던 모습이 아등바등, 그리고 아슬아슬해 보이셨나 보다.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 임신, 임신 후 태아를 품고 있는 행복한 감정과 임산부로서 조금 내려놓을 수도 있는 일에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그분의 마음은 느껴졌지만 그 후로도 내 태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출산 휴가,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장미꽃 같은 빨갛고 보드라운 딸아이를 출산했다.
아이가 커서 이제는 6개월이 되었다. 이제야 실장님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이해할 수 있다.
'그때 조금 더 내가 아기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표현했다면...' '임신했던 10개월을 조금 더 임산부처럼 누렸다면...' 하는 생각들이 든다. 출산하고 나니 아쉬워진다. 임신하는 순간 즐겨야 할 것 들은 생각보다 많다.
1. 임산부를 향한 사람들의 배려에 당연하다 생각해도 된다.
임신을 한 여자는 업무의 중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겪어보니 케바케다. 사람마다 또 업무 특성마다 다르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임산부' 이기 때문에 배려받을 상황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다거나, 바지를 입어야 하지만 치마로 변경한다던지 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 그 상황 조차 무시해 가며 괜히 프로페셔널해 보이려고 했던 지난날이 조금 아쉽다.
2. 구두에서 잠시 내려오자.
나는 10개월 내내 구두를 신고 다녔다.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출근을 하기도 했지만, 임신을 했다고 해서 내 외형적인 모습에 변화를 주기 싫었다. 9개월이 다 되어갈 때 외근을 나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땐 오늘 신발 선택 정말 실패구나 할 정도로 피곤한 날이 있었다. 고생을 사서 했다.
3. 남편에게 나 딸기가 먹고 싶어라고 자주 말하자.
입덧이 서서히 끝나가고 조금씩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었을 때 나는 딸기만 먹었다. 과일만 엄청 당겼고, 그 시기가 한창 딸기 철이어서 딸기가 들어갈 때까지 딸기를 많이 먹었다. 한 박스를 사면 그 박스의 반이상을 한 번에 다 먹을 정도였으니. 퇴근 후에 과일 가게에서 딸기를 항상 두 박스씩 사서 가곤 했다. 내가 뭐가 먹고 싶은지 그리고 뭐가 필요한지 남편에게 더 자주 말했어야 했다. 남자들은 여자와는 다르게 말로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 지금 딸기가 먹고 싶어'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알 수 있다. 사랑의 어떠한 표현도 마찬가지 겠지만. 표현하자.
4. 출산 후의 생각은 출산 후에 하자.
임신하고 나서는 호르몬의 변화가 예민한 시기 이기 때문에 엄마의 컨디션이 왔다 갔다 한다. 그중에는 출산 후에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출산 후에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심각한 마음에 괜히 생각이 깊어지는 날이 많았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 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출산 후에 생각해야 할 일들은 아기를 낳고 해도 늦지 않다. 아마 그때는 왜 고민했는지도 모를 정말 사소한 에피소드가 되어 있을 테니.
5. 기대하자.
여자의 인생이 성장하는 건 회사의 승진이 아니었다. 엄마가 되고 난 이후, 생각과 마음가짐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내 인생의 승진이라고 할까. 임신 10개월, 그리고 출산 후 6개월인 지금 까지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상황을 만나고 내일을 또 기대하는 중이다. 기대감이 많은 날일수록 그 날의 육아 컨디션도 달라진다. 기대하자. 엄마로서의 뉴 노멀 시대를.
나는 '출산 후 달라질 내 삶이 나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 중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제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럴 땐 언제나 남편은 나의 행동에 긍정적이었다. 아기를 재운 후 TV 쇼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내가 작게 속삭였다.
"아... 가고 싶다"
남편은 이 말을 놓치지 않고 반응해준다.
"가자,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상황에 따라 지키지 못할 그의 약속이라도 이런 기분일 땐 무시하고 싶다. '
가시 돋친, 앞이 뻔히 보여 생각만 해도 힘든,
어느덧 육아에선 어떤 대명사가 된 '아기랑 여행'을
장미꽃 같이 아름답게 자는 나의 아기 얼굴을 보며 기쁘게 또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