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여느 빨간날만큼의 의미만을 갖는다.
지겨운 보통의 주말처럼, 이번 크리스마스의 나는 하루종일 퍼질러져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누워서 책을 몇 장 읽고, 전화 몇 통을 돌리니 어느덧 그림자의 방향이 아침의 그것과 정반대임을 발견했다.
크리스마스와 31일 사이, 그 짧은 닷새의 하루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31일은 한 해의 마지막 몸부림답게 되돌아봄과 내다봄이 화려하게 공존하고,
30일은 날짜의 십의 자리가 3으로 넘어갔다는 데에서 어느정도 무게감이 있다.
27일, 28일, 29일도 날짜의 일의 자리가 이견 없는 ‘후반부‘의 숫자인 부분에서 미약하게나마 감흥이 있다.
그러나 26일,
26일은 크리스마스 전날인 이브가 지녔던 설렘과 환상을 모두 잃어버린 날이다.
이 불쌍한 자식은 연말의 우울감과 연초의 기대감 사이의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놓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어지고 느려지는 기운을 발산한다.
이 글을 27일에 쓰는 이유도, 어제는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제목도 크리스마스까지 D-364였다.
그러나 우울은 창의력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나는 놀라울 만큼 비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야 말았다.
이제는 좀 괜찮다.
27일이기에. 심지어 밤이다.
내일이면 28일이 될 것이고, 2025년은 그 누구도 이견을 갖지 않을 정도의 말기로 접어든다.
뭘 했다고 한 살을 더 쳐먹는지 도무지 모르겠음에도,
새로 연소할 태양의 모습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그건 새해만큼이나 시뻘건 거짓말일 것이다.
아 잘 모르겠다.
군대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일까,
한없이 우울하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귀찮게 한다.
설렘과 불안, 뿌듯함과 후회가 뒤섞여 어지러운, 그런 우울감이다.
이 감정이 싫지만은 않다.
앞으로 볼 새해들에도 이런 기분이 들 것만 같다.
실은 그것조차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난 바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