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에세이 - 2008년 1월 ~ 5월
영화제가 끝나갈 즈음, 팀장님이 업무 전용 차에 우리를 태우고 해운대 골목 어딘가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앞으로도 영화 일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난 그저 젊은 시절 한 번 정도 경험해볼 추억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고, 안정성과 지속성 없이 한철 모였다 흩어지는 조직에서 일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 뻔히 보이는 '좋아하는 것'에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작 넉 달 지속한 일에도 관성이란 것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밤샘 작업 다음날 찾아온 눈부신 개막일의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 낮에는 각국에서 속속 도착하던 영화인을 맞이하고 밤에는 야외상영작을 보던 축제의 화려하고 달콤한 면면을 맛본 것이 생각보다 중독적이었던지, 나는 서울로 올라가며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또 다른 영화제의 스탭에 지원을 하고 말았다. 면접 시간에 늦어 은근한 눈총을 받았던 그 영화제와는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았고, 대신 나는 너무나 싫었던 그 일, 하지만 첫 직장에서 배워두었으니 할 수는 있는 일, 나를 먹여 살리려면 해야만 하는 일에 지원하여 순조롭게 합격을 했다.
그리고, 그 직전에 나는 마음에 품고 있던 한 가지 소망을 이루게 되는데, 그건 나의 글이 어떤 작은 매체에라도 좋으니 인쇄되고 출간되어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었고, 글이나 영화와 관련된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어느 독립잡지에 영화 비평 글을 쓸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읽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잡지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잡지가 비치되어 있다고 한 홍대의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살짝 조악해 보이는 다른 창작물들과 함께 놓여 있던, 이름이 길고 특이했던 그 잡지에는 깨알 같은 글자로 온갖 고전영화들과 유명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 않은 영화들, 그리고 당시 붐을 일으켰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이름을 떨치고 있던 독립영화와 감독들에 관한 아마추어스럽지만 그럴듯한 문장들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잡지가 마음에 들었다. 미대를 다닌다는 한 필진의 임권택론과 그의 영화의 배경을 따라간 여행 이야기 같은 건 특히 신선했고, 페이지 한쪽에 실린 언뜻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한 취향이 묻어나던 그 필진의 얼굴에도 금세 호감이 느껴졌다.
독립단편영화 <도둑 소년>을 다시 봤다. 어쩐지 그런 영화에 관한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았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쓴 건 사실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며칠에 걸쳐 글을 완성한 뒤 이력서, 간단한 자기소개서와 함께 편집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고다르나 에릭 로메르, 지아 장커, 하우 샤오시엔 같은 이름들이 시네필의 입에 늘상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영화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다른 필진들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글을 쓴다면, 가령 주요 도로가 아닌 작은 골목을 걸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영화에 관한 지식이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감출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편집장이 나의 글을 읽었을까, 정말 연락이 올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명히 연락이 오리라는 느낌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머지않아 핸드폰에 한 통의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겨져 있는 걸 보았고 나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영화의 친구들'이 생겼다. 버스로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발행되던 잡지에 실릴 글을 써냈고, 다른 필진들의 글을 교정교열하는 일까지 맡았다. 아무런 금전적인 대가가 없었던 그 일은 살면서 내가 가장 신나게 해냈던 일이었다. 순수하게 그저 즐겁기만 했고, 그건 내가 인생에서 품어왔던 수없이 많았던 마음들 중 한 치의 의심 없이 '정말로 그랬다'고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이다.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거쳐갔던 몇 명의 편집장 중 첫 번째 편집장과는 이제 연락할 일이 없는 사이가 되었고, 상상마당에서 가져온 과월호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미대를 나온 그 필진은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지만 여전히 영화를 잘 모른다. 1년 내내 설레는 기분으로 다니던 각종 영화제에도 이제는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살면서 여러 인연을 내 손으로 놓아버린 사람이다. 단 한 명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때 이르게 덥던 어느 5월의 초입, 공기 중을 한껏 떠다니다가 조금의 열린 틈도 참을 수 없다는 듯 창문 사이로 와락 밀려들던 그 계절의 냄새를 온몸으로 맡으면서 글을 쓰던 20대 후반의 나 자신이다.
그날의 나는 에픽하이의 <낙화>를 셀 수 없이 반복해 들으면서 정말이지 이제는 봄이 넘치다 못해 여름으로 바뀌는 중이라는 걸 알았고, 한창 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전주에서 전화를 걸어온 편집장의 "여기 지금 너무 더워요"라는 말조차 어쩐지 영화 속 대사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무엇도 그날의 설레던 날씨와 감각, 당시 내가 쓰고 있던 지루하고 특이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글과 <낙화>가 뿜어대던 폭발할 것 같은 우울감의 이상한 조화보다 절묘한 합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