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5 로빈

난 이렇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by 카밀라

장마가 끝나고 요즘의 더위는 어딜가든 사우나수준이다. 장소에 따라 습하게 후끈하냐, 건조하게 후끈하냐 정도의 차이뿐이지. 시원한 물기운이 그리워지는 이 날씨에 유독 생각나는 장소는 크로아티아, 그중에서도 로빈이다.


자다르에서 로빈까지 직통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기 때문에 풀라를 경유해서 로빈으로 이동했다. 아침 8시에 풀라에 가는 버스를 타고, 오후 2시 45분에 내려 두세시간 정도 풀라를 둘러보다 로빈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7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는 것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일일지라도 꽤 지치는 일이었다. 둔해진 몸으로 풀라에 내려 터미널을 살펴보니 락커는 없고 짐보관실이 터미널에 하나 있었는데 좀 부실해 보였다. 터미널 근처는 전혀 번화가나 중심지로 가는 길로 생각되지 않을 만큼 더운 날씨를 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터미널에서 3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고 잠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버스에서 먹은 간식, 풀라터미널 앞의 카페, 이동 중 쉬는 시간에 마주친 신기한 지형(구글맵에는 Karlobag라는 곳이라고 뜨더라)

혼자 여행이 재미있는 점들 중 하나는 역시, 일행이 있었다면 그저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인 누군가와 잠깐이라도 함께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스트라 반도에서는 아시아 관광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버스터미널에서 한 동양인 여성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일본인인 치사토는 독일에서 베이커리 공부를 하고 빈에서 파티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꽤 유동적이고 유연한 근무스케쥴 덕에 며칠씩 여행을 다닐 수 있었고, 이번엔 로빈과 풀라를 여행하러 크로아티아에 방문했다고 했다.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30분남짓한 시간동안 열심히 대화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것의 좋은 점, 힘든 점도 듣고 그녀가 일하는 베이커리도 추천받았다.(알고보니 로컬에게 꽤 핫한 곳이었다!) 주변의 외국인들은 우릴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명 같은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영어랑 또 어딘지도 모를 나라말을 섞어 하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터미널 시설이 구리다고 얘기했는데 아무도 몰랐겠지..? 치사토는 여행을 끝마치고 빈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그레브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야했다. 이곳의 여행을 막 시작하는 나에게 로빈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임을 강조해주며, 이메일을 교환한 후 헤어졌다. 후에 빈에서 만나기 위해 빈에 도착한 후 이메일로 연락했지만,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잠깐이라도 만나기 위해 빈의 일정을 좀 더 늘려볼까도 고민해봤지만, 그 때 나는 프라하를 너무 기대하고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빈의 물가가 비싸 예산을 초과한 것이 부담되기도 하여 결국 언젠가로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치사토와도 헤어지고 2시간 넘는 시간을 여기서 조금이나마 편안히 보내기 위해 터미널 주변의 카페로 옮겼다. 주인이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원 아이스 커피! 하나면 끝. 나머지는 이제 모든 것을 바디랭귀지로 해결할 수 있다. 달달한 커피에다가 손님은 별로 없었어도 충전기도 쓰고 화장실도 자주 썼어서 미안함에 콜라도 한잔 더 마셨다. 풀라에 공항이 있어 꽤 큰 도시라 생각했었는데, 버스터미널은 시골 동네 버스터미널 같이 황량하고 한적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아 지친 몸을 쉬기에 괜찮았던 시간이었다.



내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하고 30~40분 정도 짧은 구간을 달려 로빈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빈의 터미널은 다행히도 (자다르나 풀라와 달리) 시가지와 가깝고 그 곳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게도 많아 안심되었다. 여행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텔을 이용한 로빈. 2박을 이용한 villa tuttoroto는 로빈의 트립어드바이저 맛집 balbi와 1분거리, 2분만 걸어 골목을 나가도 바로 바다가 보이고, 내 싱글룸에서도 바다와 배들이 보이는 아주 좋은 위치에 편한 숙소였다. 예약을 하지 않고 방이 있음만을 확인하고 갔었는데 아무 문제 없이 체크인할 수 있었다. 땀에 젖은 몸과 이제는 한 몸같은 배낭을 들고 방을 안내받자마자 내 방이 너무 예뻐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 후엔.. 언제나..도시를 이동한 날은 언제나 밥만 후딱 잘 먹고 숙소로 돌아와 쉬기!


로빈에 내려 내 동반자 배낭과, 방의 창문 뷰와 실내인데 사진이 너무 평범하게 나왔네
그날의 저녁. 내가 참 시기를 잘 맞춰 여행을 갔다고 생각하는 2가지 이유는 무덥지 않은 날씨와 적당히 늦게 지는 해.


로빈을 알게 되고 여행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사실 순전히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때문이었다. 그 드라마에서 로빈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잠깐 등장한 돌길이 깔린 좁은 골목길이 내가 원하던 이국적인 풍경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어디인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게 된 것이다. <꽃보다 누나>이후 이제는 한국 여행객들에게도 꽤 잘 알려진지 오래인 크로아티아지만, 로빈과 같은 이스트라 반도의 도시는 아직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드문 것같다. (돌아다니다 한국 여행객들을 보기는 했는데 대개는 어디 민박에서 당일투어로 오신 분들이었다. 마지막날 간 리조트에는 동양인이 나밖에 없어보였다.) 크로아티아와 가까운 인근 국가에 거주하거나 크로아티아를 몇 번이나 올 만큼 사랑하는 여행객이 아닌 이상 보통은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 또는 그 역으로 종단여행을 하게된다. 렌트카로 이동하고 일정이 긴 경우 외에는, 보통의 루트에 이스트라지역을 끼워 넣는게 상당히 까다롭기때문에 발걸음이 잘 안 닿게 되는 곳인것같다. 크로아티아의 상단 부분만 여행한 나도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꽤 힘든 길이었다고 생각되니말이다. 여행 전 한국에서 크로아티아 여행책들을 찾아볼 때도 로빈은 물론 이스트라반도 자체에 대한 내용이 몇 페이지 안 되었기 때문에 크게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블로그 검색이나 트립어드바이저 검색이 더 유용했던 것도 같다. 유럽국가에서는 휴양지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라기에 런던의 여행서점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스트라반도를 다루는 비중에 있어 우리나라의 여행서들과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애로사항이 있기는 했지만, 그 그림 안에 들어가보고 싶은 순전한 팬심과 낯선 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는 기어코 로빈을 여행 루트에 넣었고 3박을 하며 제대로 된 휴양을 즐겼다. 숙소도 모두 괜찮은 호텔로만 예약했고 가장 경비를 많이 쓴 도시 중 하나인 것 같다. 읽고 있을 책이 없었다는 점 외에는 아쉬울 것이 없던 완벽한 휴가를 즐겼다. 그 당시 느꼈던 안락함과 여유가 정말 로빈이라는 도시 자체에 베어있는 휴양지 특유의 분위기로부터 온 것인지, 아님 단순히 내가 투자한 자본에 비례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찌됐건 나는 그 3일 남짓한 시간을 풍경과 바닷물과 향기로 알차게 채웠다.


지붕 위에 도마뱀/이게 얼마만에 먹는 따끈한 스크램블과 남이 해준 모닝커피인지.. 엄청 감격했었다.


지붕 위에 도마뱀/이게 얼마만에 먹는 따끈한 스크램블과 남이 해준 모닝커피인지.. 엄청 감격했었다. 테라스에서 항구를 보며 조식을 먹을 수 있다. 음식 잘 안찍는데 너무 호텔식



로빈의 골목과 항구 시계탑 레스토랑과 관광객이 모여있는 왁자지껄한 항구. 섬 중심을 향해 골목을 찾아들어오면 금방 적막해지며 살아가는 냄새가 난다.
로빈의 골목과 항구 시계탑 레스토랑과 관광객이 모여있는 왁자지껄한 항구. 섬 중심을 향해 골목을 찾아들어오면 금방 적막해지며 살아가는 냄새가 난다.
로빈의 중심, 성 유페미아 성당이 있는 언덕에 오르면 더 탁트인 아드리안 해를 볼 수 있다.미사 중이라 내부는 들어가볼 수 없었다.



성당 앞에서 사진을 부탁했던 독일에서 온 한 할아버지. 김정은과 문대통령의 만남을 계기로 통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꽤 크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은 몰라도 나에게는 시간이 많으니 머지 않아 북한을 여행해볼 수도 있겠다며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많은 곳을 다녀보라며, 2달간 혼자 다니는 것이 멋지다고 해주신 할아버지. 당신 역시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즐기시고 있길 바란다.



미사 중이라 내부는 들어가볼 수 없었다.


로빈은 정말 바다 휴양지 그 자체라 인문학 여행가나 쇼핑 여행가에게는 큰 매력이 없을 곳이다. 하지만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뜻 밖의 풍경,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 소소한 재미가 곳곳에서 반겨주는 곳임이다.


La Puntulina, 내부 좌석도 있다. 바위의 평평한 부분에 낮은 테이블과 방석을 준비해줬다. 옆에서는 동네 애들, 관광객 구분없이 편하게 바다에 뛰어들어 놀고 있었다. 처음
처음 마시는 마티니, 계산 전에 먼저 마셔보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다시 만들어준다며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난 뭘 먹어 봤어야 알지.. 이럴 땐 그냥 에브리띵쓰 오케이!! 굳!!

마티니를 마시면서 엽서도 썼다. 전문 사진작가가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 엽서라 일반 기념품샵에서 사는 것보단 비쌌지만 종이 재질과 사진 화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았다. 어린 아이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엄마아빠들과 물놀이 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연한 바닷바람을 맞았다. 10대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두 명이 있었는데, 챙겨온 물건이 간소한 것으로 보아 이 곳 동네 애들같았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한참을 둘이서 바다 쪽을 보며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주말이든 학교를 일찍 마치는 날이든 아무때나 친구들과 바다에 수영을 하고 선탠을 하러 갈 수 있는 동네라니. 바다를 보며 나누는 고민얘기라니!(사실은 시덥잖은 얘기였을지라도!) 분지출신인 나는 마냥 부러웠다.



카페에 있는 동안 해가 너무 뜨거워 허벅지 쪽에 살짝 그을린 자국이 남았기도 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점심을 먹었다가 숙소에서 카약 투어를 위해 푹 쉬며 체력 보충을 했다.

호텔 매니저에게 추천받아 간 Scuba, 자다르에서 먹었던 것처럼 문어샐러드의 문어가 다져지지 않아 당황했지만 두 메뉴 다 맛있었다. 한국 여행객 후기도 대체로 좋은 듯.



로빈에서 처음 해본 것이 두가지있다. 바로 바다카약과 비키니! (로빈이 붙어 있는 바다는 아드리안 해라고 부른다.) 바다를 좀 더 재미있게 경험해 볼 방법을 고민하다가 호텔에 비치된 바우처를 보고 투어사(Adistra sea kayaking)를 찾아가 선셋 카약킹 투어를 당일예약했다. 190Kn 정도로 기억한다. 2명 이상이 되어야 출발이 가능한데, 내가 예약하기 전에 한 한국 여행객 분이 예약해 놓으셔서 다행히 그 분도 나도 출발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여행오신 분이었는데, 이전에도 로빈에 여행오신 적이 있으신 분이었다. 덕분에 크로아티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말로 편하게 같이 얘기하며 재밌게 탈 수 있었다. 뒤에서 열심히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다. 방수팩도 안 챙겨오셨으면서...감사하다. 정작 나는 방수팩에 넣어 와놓고도 제대로 활용 못했는데..


가이드 Ivan과 함께 한 카약 투어는 3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던 투어 회사 앞에서 만나 차로 Monte mulini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투어 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카약을 타며 아드리안 해를 누비면서 섬도 세 곳 정도 이름을 소개받고 한 곳은 카약을 세워 놓고 전망을 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기도 했다.


내 폰으로 찍은 아드리안 해, 앞의 카약은 가이드 Ivan의 뒷모습.가벼운 간식. 나만 두 잔 마셨네, 전망대 위에서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러 정착한 작은 섬. 이름은 까먹었다.
가벼운 간식. 나만 두 잔 마셨네, 전망대 위에서


간간이 호텔 리조트에서 오고가는 보트가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 잠시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세 사람만이 바다 위를 동동 떠다녔다. 왁자지껄하고 웃음이 넘치는 투어도 매력이 있지만, 조용히 갈매기 소리와 바닷소리, 노젓는 소리를 들으며 가는 것은 그것대로 신비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파도 소리라는 것이 모래사장이나 바위에 부딪치고 물러나는, 그런 부서지는 소리만 생각하기 쉬운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는 파도가 넘실넘실대며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딘가에 도착해서 끝내는 소리가 아닌, 무수히 먼 곳에서부터 꾸준한 속력으로 이동하는 여정의 소리. 노젓는 소리는 촉촉하고 맑았다.


Ivan은 구름이 많아 일몰을 깨끗하게 보여주지 못했음에 아쉬워 했지만, 구름이 해를 가려준 덕분에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었고 바다와 풍경을 선글라스 없이 색을 올곧이 볼 수 있었다. 그 조그마한 배와 구명조끼에만 의존한 채로 바다 한 가운데에 동동 떠다닐 수 있고, 내 손으로 저은 노로 이 곳 저 곳을 누빌 수 있었다. 그렇게 깊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있으면서, 바다의 표면에 그만큼 가깝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잘 없겠지.


중간중간 바다 위에서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어마어마한 갈매기 떼도 목격했다. 저기서 디너 파티가 열리나 봐라고 농담했더니, Ivan이 여기서는 갈매기를 shitter 라고 부른다고 설명해주었다. 똥만 싸댄다고 그렇게 부르는거겠지... 우리도 서울에서 비둘기로 골치아픈데 이 곳은 갈매기가 성가신 존재인 것 같았다. 섬에서 카약을 주차해놓은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기 갈매기가 우리가 지나갈 때 마침 볼 일을 보고 있더라. "Good job. Baby shitter"


그가 해준 여러 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것은, 크로아티아 관광지의 물가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많이 높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해변가의 레스토랑을 주로 다닌 나에게는 로빈의 물가가 여느 유명 관광지와 비교했을 때는 싼 편이나, 그 자체를 두고 물가가 저렴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느껴졌다. 로컬들은 섬이 아닌 육지쪽으로 한참 들어간 지역에서 주거하고 있을테고 그 곳만이 현지 물가에 맞춰져 있을테니, 뚜벅이 여행가인 나로서는 경험할 일이 없었다. Ivan은 해변가의 레스토랑들 가격은 다들 터무니없다며 관광객들만 이용할 것이라고 말하더라. 그리고 또 재밌는 점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입장료를 두고 너무 비싸다고 평가하며, Ivan 본인도 살면서 한 두번밖에 가지 않았다는 점. 플리트비체가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장소였어서 여기 국민들에게도 사랑받는 트레킹 장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니 흥미로웠다. 이동, 숙박비까지 생각했을 때 현지 사람들에게 쉽게 찾을 장소는 아니었나보다. 세계 어딜가든 관광산업으로 유명한 도시는 물가 격차가 크다는 점을 다시 느꼈다. Ivan은 봄여름과 같이 바다에 들어가도 괜찮은 날씨에는 가이드로 일하지만, 그렇지 않은 겨울과 같은 시기에는 해양연구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바다 보존에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에 그 깨끗한 로빈 바다에 동동 띄워진 플라스틱 병 하나와 마주쳤다. 노를 저어 그 병을 건져내 들고 돌아오는 Ivan의 모습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누구나 조금의 불편함만 참으면 더 큰 번영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을텐데.


섬을 둘러보던 중 들어간 작은 교회의 팻말에 Rovinj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Ivan에게 로빈이 맞는 발음인지, 로비니가 맞는 발음인지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전자가 크로아티아어로 이 지방을 부르는 말, 후자는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말이었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이탈리아 지배하에 놓였던 시기의 영향과 이탈리아와 지리적으로도 가깝다는 (성수기에는 아드리안 해를 통해 베니스에서 페리를 타고 풀라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지리적 요소로 인해 이탈리아어를 모두 웬만큼 한다고 하더라.


두 분 덕분에 끝까지 카약킹을 잘 즐길 수 있었다. 그 때의 소리와 느낌은 참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이런 액티비티를 잘 안하는 편인데 도전을 하나 해낸 것같아 마음이 충만해졌다. 마지막에 카약을 정차시키면서 바닷물이 얼굴에 튀었다. 바닷물이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여기 바닷물은 짠 맛도 없겠다고 줄곧 생각했는데, 더럽게 짰다. 눈이 다 따갑더만.


지쳐서 저녁은 숙소 근처 아이스크림으로 떼우고, 다음 날 카타리나 섬을 위해 일찍 쉬었다.

다음날 테라스에서 항구와 지붕 위 도마뱀을 구경하며 아침을 알차게 먹은 뒤(비키니 걱정은 1도 없었다. 여기는 로빈이니까!), 가볍게 주변을 산책했다. 체크아웃시 계산할 때 내 실수로(체크인시 내 카드를 보증용으로 복사해놓으려고 가져간 걸 호텔비를 계산한 걸로 내가 착각했다) 잠깐 문제가 생겼지만 잘 해결되었다. 친절하고 멋진 tuttorotto의 직원과 따뜻하지만 쿨한 허그로 인사를 하고 카타리나로 가는 보트의 선착장으로 찾아갔다.


선착장에서 이제는 익숙한 이 어린 동양인 여자애가 왜 혼자서 여기 있는지 신기하지만 아닌 척하는(ㅋㅋㅋㅋ) 눈빛들을 받으며 뜨거운 햇살아래 내 동반자배낭과 기다리자 보트가 왔다. 보트 안에서 한 눈에 항구와 섬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찍었지만 정말 잘 찍었다.


호텔 카타리나는 세인트 카타리나라는 섬 전체를 리조트로 운영한다. 블로그 검색을 통해 로빈에 뭐가 있나 찾아보던 중 우연히 알게 되어 한 번은 유럽에서 호사도 누려봐야지! 하는 생각에 예약했다. 스탠다드 더블, 가장 작은 방으로 예약했어도 호사였는데 얼떨결에 패밀리룸에 업그레이드 당첨까지 얻어걸렸다. 들어가보니 럭셔리하거나 모던한 인테리어는 아니더라도 거실같은 방에 이층침대, 안방같은 방에 킹사이즈 침대, 식탁, 빨래건조대까지 구비된 테라스까지 있을 건 다있는 구조였다. 들어가서 너무 신나서 엄마한테 보이스톡으로 자랑도 하고 엄마 비키니를 입고서는 신난 내모습을 사진으로도 남겼다. 프론트에서 정말 내방 맞냐고도 또 확인했다.

호텔 카타리나. 풀장이나 다른 곳은 프라이버시문제가 있으니 사진을 찍지 않았다.


호텔을 나와서 선착장 반대쪽 해변으로 나가면 리조트 이용객들만 이용가능한 풀장과 누구나 이용가능한 해변 해수욕장이 있다. 전날 Ivan의 설명에서 추측컨대, 섬에 리조트가 운영되고 있더라도 그 섬 자체는 공공의 자연이니 그렇게 오픈되어 있는 것같다. 나는 리조트 뽕을 뽑기 위해 풀장에만 있었는데 거기서 뒤집어 누워 떠다니고 개구리헤엄치면서 혼자 열심히도 놀았다. 중년부부가 많았는데, 대부분은 잠깐씩 물에 몸을 적실 뿐 선탠과 책 읽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만 했다. 그래서 혼자 전세 낸듯이 잘 놀았다. 놀다가 쉬다가 낮잠도 자고. 적당히 풀에 있다가 바닷가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낮잠 자고 몸이 다 마르고 나니 진이 빠져서 그냥 바다는 쳐다만 보고 왔다. 풀장 물이 어마어마하게 짠 걸로 미루어보아 바닷물 끌어다 쓴 거겠지라고 지레짐작하고,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해변가 구석에 쓰레기가 조금 뭉쳐있는걸 봐버리기도 했고.. 이만해도 충분히 놀았다는 생각에 맥주나 한잔 하고 쉬러 방으로 돌아갔다. 근데 돌아와서 보니 등 전체와 가슴 언저리에 또 햇빛화상을 입었더라... 노느라 씻겨 내려간 것을 염두에 안 두고 덧바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애초에 혼자서 스틱 선크림으로 온 몸을 꼼꼼히 바르겠다는 것 자체도 무리였다. 다음엔 오일이나 선크림을 등에 꼼꼼히 발라줄 사람을 꼭 대동하리..!!


카타리나 섬의 해변, 사진 색보다 실제 색이 훨씬 영롱했다.
호텔 선착장의 아침과 해질녁



로빈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그 유명한 balbi! 다행히도 웨이팅없이 갈 수 있었다. 뭘 먹을까 한참 들여다보다가 누군가 맛있다고 추천한 해산물 모듬 튀김을 먹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난한 해산물파스타나 구운 생선메뉴를 주문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같이 시킨 샐러드 양이 많기도 했지만, 튀김이 식어가면서 좀 물린다고 느껴졌다. 그렇지만 웨이터도 적당히 친절했고 다른 테이블들을 둘러보니 다들 만족스러워하는 것같았다. 바닷가를 보면서 먹는 것도 좋지만 로빈 특유의 아기자기한 골목길 사이의 식사도 기억에 남는 그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balbi


그렇게 저녁도 먹고 간단한 맥주거리를 사서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그 하룻밤이 사실상 크로아티아 마지막 밤이나 다름없기에 (다음날 자그레브에 가서는 하룻밤 잠만 자고 빈으로 이동해야했으므로) 참 아쉽더라. 다음엔 꼭 누군가와 크로아티아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얼마나 바다를 사랑하는지 느끼게 해준 로빈과 크로아티아. 두번째 크로아티아는 가능하면 엄마와 함께, 그리고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졌으면 한다.


IMG_20180724_012144.jpg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린 스케치


*모든 사진은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도용 및 무단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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