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쓰는 엄마의 일기는 엄마에게 분명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용기 내어 그 무엇보다 예쁘게 써보려고 합니다. 엄마의 생애를 전부 알진 못하더라도 저는 엄마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아들임은 분명할 겁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엄마를 예쁘게 쓸 수 있는 사람 또한 저라는 걸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득해지는 엄마를 선명하게 되살리는 작업이라 시작이 무척 두려웠지만 꼭 선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엄마를 또박또박 쓸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일기는 분명 슬픈 장면으로 가득한 고인의 드라마로 재생될 테지만 끝나고 난 뒤에는 곱디고운 엄마의 영화로 남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할 겁니다.
향수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미국여자의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배를 굶주리던 어느 시절에 엄마는 미군부대 주변에서 미소를 팔던 여자의 집에 잠시 얹혀산 적이 있다 그랬다. 그때 엄마는 온갖 화장품들 냄새를 다 맡았다 했는데 그중에서도 다디단 꽃내음이 나는 향수 하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게 어떤 냄새냐 물어도 엄마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냄새라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부족한 당신의 어휘력에 부끄러움을 타서 그런지 몰라도 그 냄새가 무엇인지 물으면 엄마는 시종일관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웃어 보이는 게 전부였다.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서도 엄마의 가장 화사했던 시절 이야기는 이때가 아니었을까 한다. 가난한 시절이라 했지만 그때의 엄마는 활짝 핀 꽃보다 아름다웠을 테고 화창한 봄날보다 화사했을 테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엄마를 만나보고 싶다.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엄마를 만나 '어려서 좋겠다'는 농담도 하고 '예뻐서 좋겠다'는 시샘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고른 향수 하나를 선물하며 두 손에 포옥 감싸 쥐여주고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향기가 꼭 엄마 같아.'
아픈 뒤로 엄마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화장대를 채우고 있던 건 병원에서 탄 약봉지들과 자기 전 엉덩이와 발바닥에 듬성듬성 붙이던 파스 뭉치, 그리고 종종 내가 사다 준 커다란 수분크림 한 통이 다였다. 내가 태어나고 기억이라는 게 생기고 혼자 먹고 자고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엄마는 아팠다. 결국 내 기억 속에 엄마는 평생을 아파했으니 가끔은 내가 태어난 게 잘못이란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성인이 되고 집을 벗어나 작은 원룸에 혼자 살게 된 뒤로 나는 그 '잘못'으로부터 좀 무뎌졌고 덜 울게 된 것 같다.
한번은 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차려준 따듯한 저녁밥을 먹고 화장대에 앉은 적이 있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도 향수가 하나 있었다. 거울 앞에 놓인 그 동그랗고 빨간 병 하나를 보며 무엇이냐 물었더니 엄마는 무심하게 향수라 그랬다. 정겹게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와 달리 엄마의 그 '향수'라는 한마디는 어딘가 적막했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은 터라 배가 부른 나는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씻고 나오니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스킨과 로션을 찾는 나에게 엄마는 서랍을 열어보라 했고 속에는 방문판매 아줌마에게 받은 샘플용 스킨로션이 가득했다. 그리고 깊숙한 서랍 안쪽으로 빨간색 루주 하나와 표면이 쪼개진 파운데이션 하나가 케이스도 없이 놓여있었다. 그게 엄마의 화장품 전부였다. 코끝이 아려왔다.
걷는 게 불편했던 엄마는 멀리 나가지 못했다. 주변에서 차를 끌고 교외로 놀러나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엄마의 세상은 집에서 가까운 시장과 병원, 쓰레기를 비우러 다녀오는 분리수거장과 근처 근린공원이 전부였다. 병세가 악화된 뒤로 화장할 일이 없던 엄마는 가까운 할머니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갈 때만 파운데이션과 루주를 바르고 아픈 티를 감춰왔던 것이다. 화장대에 약봉지들과 함께 덩그러니 놓여있는 저 향수병 역시 방문판매 아줌마가 꾸역꾸역 쥐여준 엄마의 생기였을 텐데 이상하리만치 향수는 새것 그대로였다.
"향수는 잘 안 써?"
"아픈 사람이 향수는 무슨 향수야. 아들 쓰려면 써."
그때 내가 가장 슬펐던 건 그토록 많은 약봉지들에게 화장대를 내어준 엄마 때문이 아니라 화장대에 유일하게 버티고 선 향수병에 내려앉은 뽀얀 먼지 때문에. 엄마는 몰랐겠지. 스킨을 바르면서 나는 울고 있었다는걸. 스킨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착착 두드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에게 '그럼 내가 가져간다'는 말을 나는 왜 그리 쉽게 내뱉었을까. 그리고 엄마는 왜 그리 쉽게 그 생기를 아들에게 가져가라 해버렸을까. 내일은 나랑 같이 저 향수 뿌리고 어디든 나가자 했다면 저 향수는 엄마의 맥박을 타고 흘러 생기 넘치는 향으로 뛰고 또 뛰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때 우리는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하는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서로를 보듬기보다는 서로에게 티를 내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