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로스아르코스 - 로그로뇨 29Km
까미노에 와서 걷던 하루에 양 보다 좀 더 거리가 되는 날, 또한 날씨도 더욱 더워지는 것 같아 오늘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곳까지 와서도 조급할게 무어냐.. 하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변화된 환경보다도 오래된 습관인듯하다. 일찍 출발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가졌던 터라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문 앞에 서니 아직 알베르게의 문은 오픈되지 않고 있었다. 6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가 싶었는데 누군가 나가는 문을 알려줘서 나올 수 있었다. 캄캄한 밤이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니 어제 걷던 벌판이 나왔다. 양옆으로 포토밭인지 밀밭인지 정확히는 모를 밭을 가르는 길손 전등을 켜고 걸었다. 작은 기타를 맨 아주머니가 먼저 걸어가셨긴 했지만, 점점 멀어져 가고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나 혼자 걷는.. 그 길의 풍경이 무척 궁금했다. 공기가 차갑고 신선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의 상쾌함에 들뜬 기분이 들었다. 한참 걷다 보니 등 뒤로 날이 밝아오는 게 느껴졌다. 뒤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따라 잡히지 말아야 하지 하는 괜한 생각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산솔이라는 어쩐지 이름이 기억에 남는 마을을 지나.. 계속되는 길 걷고 걸었다.
이렇게 멀리서 마을이 보일 때면 힘이 난다. 비에 나라는 마을이었는데 여기도 오늘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내가 비아나에 도착할 때쯤엔 축제가 한창 준비 중이었다. 소축제라고 하는데 붉은색 국기가 매달려있고 붉은색 수건을 목에 매단 사람들의 복장을 보니 스페인 느낌이 물씬. 여기서 축제를 구경하고 갈까도 싶었지만.
언제 어느 때에 무엇을 하는지 몰라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그만큼 더위가 무서웠던 듯..
오늘은 하늘이 무지 파랗다.. 비아나를 지나쳐 한동안은 계속 걸었다. 상쾌한 오전 타임이 지나면 11시쯤부터는 힘드니까 그냥 걷기만 한다..
그렇게 걷다 지쳐 갈 때쯤. 로그로뇨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로그로뇨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팜플로나 보다는 약간 작은데, 굉장히 깔끔하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이면서도 멋스러웠다.
로그로뇨는 타파스가 유명하다고 안내소에서 알려주었다. 타파스 주요 거리도 따로 있는 관광지도를 받아 들고 기대에 부풀었다. 저번에 만났던 한국인 친구가 타파스가 굉장히 맛있다고 꼭 먹어보라고 해서 벼르고 있던 참인데.. 오늘 점심은 꼭 타파스를 먹어보리라는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역시나 숙소에 좀 일찍 도착한 편인데, 숙소 광장엔 발을 담그는 곳이 있었고, 사람들이 도착해 양말을 벗고 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뒤에 부산 친구 중 한 명도 도착했다. 거의 녹초가 되어있었다. 너무 더웠다.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였는데 2층 침대가 꽤나 낮았다. 매일 달랐던 숙소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숙소 사진은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쉽다.
씻고 빨래하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타파스를 먹어야 하니까! 저녁에는 부산 친구들과 중국식당 웍에 가기로 했었다. 웍은 뷔페식당인데 가격 대비 음식 종류가 많고 많이 먹을 수 있고, 스페인 서양 음식에 물린다면 가기 좋은 식당이다. 소도시마다 종종 있어서 산티아고 길에 오른 한국사람들이 많이들 포식하러 가는 곳 같다.
어제 맥주 한 캔 하면서 푸짐하게 먹어보기로 다짐했던 곳이라. 하지만 타파스도 너무 먹어보고 싶어서 낮에는 타파스를 먹으러 씻자마자 홀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시에스타 시간이랑 겹쳐서 대부분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그러다 아직 영업 중인 바가 있어서 머뭇거리다가 타파스를 종류별로 세 개 주문하고 맥주 한잔을 허겁지겁.. 바게트 빵 위에 치즈에 하몽(돼지고기 말린 것)과 딸기잼이 올려있는 게 젤 맛있었다.
알딸딸하고 몽롱한 기분과 스페인의 뜨거운 열기와 달콤했던 타파스의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두둑이 먹고 나면 혼자여도 기분이 좋다.
오늘은 나의 34번째 생일. 친구 하나 없이 혼자이지만 멋진 도시에서 나름 잘 지내고 있다. 로그로뇨를 대충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가 너무 더웠다.
저녁엔 부산 친구들과 중국 뷔페식당인 웍에 갔다 웍을 기대했던 듯한데.. 숙소에서 삼십 분은 걸어야 했던 터라.. 물집 잡힌 발을 가지고 있던 한 친구는 발을 질질 끌면서 식당까지 가느라 고생이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밖에서 기다리다 제일 먼저 식당 출입 후 음식을 흡입하는데.. 맛있었지만 음료수 가격을 포함하니 급 돈이 비싸졌다. 물도 음료 가까운 돈을 받고.. 맥주가 밖에선 1유로도 안되는데, 중국 레스토랑에서는 음료가 2.5유로였다. 물이 필요하냐고 당연한 듯 묻고 돈이 추가 되는 건 말도 안 해서.. 뭔가 불쾌했지만.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아 하는 분위기라. 우린 그냥 먹었다 마구. 맛있게 먹은 것으로 뿌듯한 마음.
생일이라 축하받고 싶었던 건지.. 그런 얘기 잘 안 하는데 오늘 생일이라고 스스로 자백했다.
어색하게 축하해주는 아이들.. 괜히 얘기했다 싶었지만. 누구에게 축하받고를 떠나.. 그래도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맥주 한 캔 사주는 고마운 동생.. 하지만 아까 물집 때문에 고생하던 친구는 이제 거의 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다지 누나 노릇도 언니 노릇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챙김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누굴 챙겨주는 법도 잘 모르는.. 안쓰러운 맘이 들었지만. 도움도 딱이 안 되는 사람이었기에 쾌유를 빌며
나의 방으로 돌아왔던 것도.. 어쩐지 지금 글 쓰면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