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아헤스 - 부르고스 20km
오늘은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과 함께 6시에 출발하였다. 부르고스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멋졌던 것 같다.
새벽에 아침이 열리던 길, 달빛에 본 해바라기 밭과 십자가 언덕에서 본 일출, 그리고 끝없는 밀밭,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빛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보통 걷다 보면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목적지까지 아주머니 두 분과 동행하였다. 얘기 나누다 보니 놀랍게도 두 분은 나의 중, 고등학교 동문이셨다. 나 원 참.. 세상 좁다니까..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부모님이 애쓰고 귀하게 키우신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부모님의 애쓰심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 감사했다. 서울에서 나는 가족을 힘들어했다. 옥신각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어떨 땐 너무 시달리고 지치고 힘겹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엄마 아빠로부터 받은 것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을 회복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걸었다.
내가 잘 몰랐던 나를 발견했다. 너무 많은 사랑을 사실은 받아왔고, 내가 지나 온 모든 것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젠 다 괜찮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어떻게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올 수 있겠어.. 별것도 아닌 일들에 너무 상해있었다.
부르고스가 다가오자 공항이 가까운지 비행기가 뜨고 지는 소리가 울리는 길을 지나 부르고스 도시에 진입하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는 길을 택했는데, 공원이 너무 아름다웠다. 많은 시민들이 운동하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이젠 순례자보다 도시 주민들이 더 많아 보였다.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크고 아름다운 숲을 지나 마침내 부르고스에 도착하였다.
부르고스는 생각보다 컸다. 대성당의 규모 때문일까.. 도시를 두리번거리며 숙소를 찾았다. 대성당 근처였는데, 공립 알베르게로 꽤 많은 인원을 수용했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다 여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설이 좋았다.
오늘 하루밖에 볼 수 없는 여정이어서 짐을 풀고 얼른 씻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맛있는걸 좀 먹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로운 스페인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막상 혼자서 뭔가 사 먹으려니 낯선 스페인 메뉴판과 관광지역이라 무리들 틈에 홀로 뭔가 시켜먹기가 부끄러워서 자꾸만 두리번 거렸다. 지나가다 만만해보이는 곳에서 꼬치구이와 맥주 한잔으로 배를 살짝 채웠다.
대성당을 구경하기로 하고 표를 끊고 들어갔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스페인 3 대성당 중 하나라고 할 만큼 굉장히 큰 규모의 성당이었다. 고딕 양식의 훌륭한 사례라고 하는데.. 겉으로만 봐도 웅장함이 있었는데, 안에도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채플실과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성당의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한 시간 넘게 성당을 둘러봐도 다 본 게 맞나 싶게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문화와 역사를 좀 더 공부하고 관심을 두면 여행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지식도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보려는 호기심만 왕성했을뿐
대성당 관람 후 저녁 무렵엔 양송이 타파스를 먹어볼 수 있었다. 바게트 위에 짭조름한 마늘과 오일로 간한 송이버섯과 새우를 쌓아 만든 안주류의 음식이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오늘은 이것저것 안주로 배를 채우는 날인가 싶어 또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손님이 엄청 많고 복작한 바가 있어 들어가서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음식을 많이 주문하나 해서 보다가 브라바스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처음 들어보는 음식인데, 사람들이 많이 시켜서 궁금했다. 그냥 감자에 마요네즈 비슷한 소스를 듬뿍 찍어 먹는 건데, 우리나라로 치면 떡볶이 같은 음식인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게 저녁도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부르고스에서 하루정도 더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시간 여유가 없을 것 같아 하루도 쉬지 못하기에 뭔가 아쉬워서 숙소로 들어가지 않은채 계속 성 주변을 서성거렸다.
부르고스까지 왔으면 이제 챕터 하나는 마친 셈이다.
부르고스 이후부터는 메세타 평원 지역인데, 끝없는 들판이 펼쳐지는 곳이 많다. 더위로 힘들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메세타 평원을 걷고 싶었다. 내일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