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부르고스 - 산볼 24km
새벽부터 코 고는 소리와 코 고는 소리에 짜증 내는 소리에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누군가 시끄럽게 코를 골았는데, 그것 때문에 어떤 아저씨가 너무 화가 나서 벽을 치며 욕을 하셨고, 그런 식으로 화를 내는 모습에 화가 난 또 다른 아저씨와 언쟁이 붙으며 조금 살벌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잠들기가 힘들어서였는지 컨디션이 아침부터 안 좋았다. 부르고스쯤 오니 자주 보던 얼굴들이 이제 각자 일정을 따라 다르게 걷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제 좀 익숙해져서 마치 동네 사람들처럼 친근감이 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면 영영 못 볼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에 쓸쓸함이 밀려왔다.
아침에 길을 걷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팔을 불며 걸었다. 낭만적이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종종 작은 기타를 메고 걷는 사람들도 있긴 했는데, 아침에 들려오는 나팔소리라니.. 이곳과 너무 어울린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신 건지 목발 같은 보호기구를 팔로 지탱하시며 걸으시는 분이셨는데, 금색 커다란 나팔까지 가지고 오셔서 아침을 알리는 소리에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발목이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어서 주춤하다가도 의지를 가지고 걸으니 또 걸을만한 것을.. 많은 사람들은 나를 건너 스쳐 지나가고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걸었다.
걷다 보니 하늘은 왜 이리 그림 같을까 붓질을 한 것 같다. 힘들어도 이런 하늘을 보면 힘이 난다.
열심히 쉬지 않고 걸은 탓에 좀 일찍 11시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직은 걸을만했기에 좀 더 가볼까 싶었다. 중간에 산볼이란 곳이 있는데, 마을이라기보단 작은 알베르게 하나 있는 별장 같은 느낌의 곳이다. 수용인원이 13명 정도밖에 안되고 예약도 안돼서 운이 좋아야 잘 수 있는 곳인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밤에 무수한 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곳에서 묵으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나무들 옆에 보이는 조그마한 집이 산볼 알베르게이다. 도착했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어서 자리가 없었다. 여기서 5km 더 가야 다음 마을이 나오는데, 날은 무척 더워지고 있었다. 그냥 땀이나 좀 식히고 가야겠다 싶어서 나무들 사이로 놓여있는 벤치에 누워 팔자 좋게 휴식을 취했다. 꼭 여기서 잠을 잘 수 없어도 그냥 이렇게 누워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너무도 평안했다. 무지 더운데 여기는 바람이 선선히 불었다.
그늘에서 땀을 식힌 후 다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알베르게 주인아주머니가 자리가 낫다며 여기서 지낼 수 있다고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여기 왔던 몇 명이 다음 마을에 가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나 때문인가? 난 괜찮은데..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몇 명이 떠나는 것이다. 어리둥절해져서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꽤 행운인 셈이다. 여기서 묵고 싶어도 쉽사리 기회가 나는 게 아닌데.. 행운인 건지 배려인 건지 감사하게도 나는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숙소는 굉장히 아늑했다. 어디 별장에 단체로 몇 명만 놀러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난 굉장히 어색했다. 다른 외국인들끼리는 서로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어느 정도 인사를 나누며 지내던데.. 나 혼자 동양인에다가 말주변도 없어서 엉뚱하게 껴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뭐 그건 기분 탓이고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까처럼 숲 속에서 일기도 쓰고 다음 일정도 짜며 시간을 보냈다. 야외에 찬물로 발을 담글 수 있는 곳도 있어서 발목의 붓기도 식힐 수 있었다.
알베르게를 관리하시는 분이 굉장히 깐깐한 느낌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런 깐깐함이 이곳을 굉장히 청결하고 잘 유지하게 하는 듯했다. 이런 숲 속이라면 특히나 베드벅도 있을 수도 있는데, 벌레는 보지 못했다. 이 주변에는 식당이 없기에 저녁식사까지 준비해주시는데, 원탁 식탁에 둘러앉아 빠에야와 샐러드와 와인을 먹으며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이 대화하고,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웃고 있었다. 말은 잘 못해도 알아들을 순 있었기에.. 외국인들은 나이는 잘 묻지 않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물어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문화와 같은 의미로 물어보는 건 아니겠지만 서로의 나이에 대한 궁금함은 가지고 있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나이 알아맞히기를 했는데 나는 꽤 연장자에 속했다. 대부분 이십 대였다. 물론 외국인들은 나를 어린아이 축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작고 왜소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좀 짠해 보였나.. 도움을 많이 받은 거 같다.
다소 긴장했지만 생각보다 즐거웠던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마친 후 남은 하루를 정리하였다. 밤에 별을 보기 위해 간 건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