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대접을 두 손에 앙-쥐고, 호방하게 들이켰건만 마신 술의 반은 뿜어져 나오고, 그 반은 코로 흘러나왔으며, 뜨겁다 못해 쓰리고 따갑고 괴로웠다. 심지어 열이 오르고, 눈 앞에 물안개가 자욱하고,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할배-이상하다”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내 의지대로 머리가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에서 연신 고꾸라지는게 아닌가. 아이고- 나죽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껄껄 거리는 할배 무릎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 거렸다. “할배- 모한다 이런걸 묵노. 할배는 이래 맨날 괴로븐걸 참았나.” 이내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여름 맛은 고약하기 그지없구나. 어른이 된다는 건 여름두꺼비소주만큼 뜨겁고 괴로운 일이구나. 나의 잦아드는 숨소리 위로, 매미소리가 퍼져나갔다. “이요-이요-이요오오” 사이렌 소리처럼 울어대는 매미 소리. 그건 내 인생을 향한 첫 경고음이었다.
그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거짓말처럼, 그 여름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이듬해에, 25도로 알코올 도수를 낮춘 소주가 등장하였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던 30도 두꺼비는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 맛, 30도 두꺼비의 뜨거운 여름, 어른의 세상을 만만히 보지 말라 경고하던 그 두꺼비를 다시 만날 수 없다니.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할아비에게 세상의 전부였고, 내게는 여름을 알리는 당연한 신호탄이었건만, 대체품인 25도 소주가 당연시 여겨지는 세상이 이상해보였다. 무엇보다, 여름 맛을 흥얼거리던 할아비의 레파토리가 사라졌고, 할아비와 나의 여름 유흥거리가 사라졌다. 두꺼비는 소주이상의 의미를 잃었고, 우리는 더 이상의 흥겨움도 더 이상의 설레임도 없었다.
우리의 서울 생활을 뜨겁게 위로해주던 30도 두꺼비가 사라진 후, 소주에 달려있던 코르크마개도 사라졌다. ‘더 이상 소주 밑둥을 두들기지 않아도 된다.’ ‘소주 목을 쳐내어 코르크찌꺼기를 빼내지 않아도 된다.’ 이 간편성이 할아비 술상의 4박자 소리와 그 경쾌함을 앗아갔다.
그리고 모든게 획일화 되었다. 병따개는 돌려따는 병뚜껑으로, 투명색의 소주병은 초록색으로. 전국 어디를 가든, 어느 회사에서 만들건 소주는 모두 같은 모양이 되었다. 이 획일화된 시대의 소주는, 98년 23도 참이슬이라는 표준 규격을 만들었고 그 즈음 우리의 여름도 규격화 되었다. 전국 어디서나 만나는 에어컨으로 전국 실내 온도가 통일되었고, 우리의 여름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밍밍해진 여름 온도와 23도로 낮아진 소주. 그리고 맥주라는 대체품을 만나며, 나는 여름날의 소주맛을 잊었다.
이제, 그 시절 할아비 나이 즈음이다. 23도 소주도 추억이 된 지금, 30도에서 23도의 변화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소주는 더욱 가벼워졌다. 부담없고 가벼운 사이로 지내자는 소주들이 익숙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여름날에는 길 위로 쏟아지는 매미들의 소리가, 기억 언저리에 맴돌던 뜨거운 여름날의 두꺼비 소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