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아빠가 다시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
아빠는 언제나 나를 지켜 주었다.
나는 아빠가 사라진 뒤에야
그 사실이 얼마나 거대한 사랑이었는지 알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다 머리를 맞았다.
울까 말까 하던 찰나,
아빠는 이미 공을 집어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공을 던진 그 오빠의 머리통을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학교 선생님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던 날
아빠는 교장실로 찾아가셨다.
다음 날 선생님은 조용히 내게 사과했다.
대학에 들어가 남자친구가 생긴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대문 앞이나 버스정류장에 서 계셨다.
여리고 어린 내 남자친구들은
그 뒤로 우리 집 앞에 얼씬도 못 했다.
그러던 아빠가 가족력이 있는 폐암으로
환갑을 한 해 앞두고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아빠 없는 세상과 마주했다.
보호필름이 벗겨진 핸드폰 액정.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폭우.
루프 없는 절벽.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큰일이 있을 때면
백 명의 참견 속에서도 허전했고 서러웠다.
딸아이 학교 숙제 때문에 가족사진을 찾으려고
사진들을 들추다가
아빠와 함께 계곡에서 행복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마주했다.
사진 속 나는 계곡에 막 도착해
신나는 일을 앞둔 개구쟁이 표정이었고
아빠는 내 뒤에서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아빠의 모습이 그리워
사진 속 아빠를 손으로 더듬으며 눈이 뜨거워지는 순간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몸이 휘청했고
계곡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둘러쌌다.
나를 휘감는 바람 같은 공기가
바닥으로 내려가자
귓가에는 산새들의 웃음소리와
나뭇잎이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던 아빠가
“왜 울고 있냐”며
나를 향해 뛰어오셨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빠의 모습이 너무 반가워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빠는 다 괜찮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다시 튜브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가 있는 그곳에 앉아
계곡물을 발로 찼다.
아무렇지 않은 척 놀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었다.
아빠와 튜브를 타고 계곡에서 놀고,
수박을 먹고,
고기를 구워 먹고,
공기놀이를 했다.
아빠는 손이 길고 유연해서
꺾기를 하기에 탁월했다.
그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는 것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봤다.
공기놀이에서 아빠를 이기기는 어렵지만
나는 계속 행복했다.
한참을 먹고 놀고 웃고 떠들다가
누가 내 어깨를 흔드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딸아이의 목소리다.
— 엄마 잠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