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되는 어떤 것

- 어쩌면 나를 살려준 것일지도 -

by 재인

코로나19를 처음 언론에 알린 우한의 의사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 뉴스를 보며 오래전, 사마르칸트에서 만났던

한 중국인 의사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를 살려준 사람일지도 모르는.


나는 마지막 여름방학에

배낭여행을 떠났다.

김포에서 북경으로,
서안을 지나 둔황과 투루판, 우루무치, 사마르칸트,
그리고 상해로 이어지는 4주간의 실크로드 여정이었다.


사마르칸트에 도착했을 때
여행을 시작할 때와 달리 혼자였고,

몸이 많이 아팠다.


한국을 떠난 지 3주 남짓
심한 향수병과, 맞지 않는 음식
여러 스트레스가 겹쳐 장염에 걸린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망가져 있었다.


내가 묵던 호스텔 다인실에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배낭여행자가 있었다.


그중 둘은 여행 초반
서안에서 만났던 일본 대학생들이었다.


내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자,
일본 여자아이가 오트밀 한 봉지를 건넸다.


난생처음 본 오트밀을 우유에 말아먹으라는데,
종이박스를 잘게 찢어 우유에 적셔 먹는 것 같아
토할 뻔했다.


이러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아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낯선 나라의 병원은 두려웠지만,
두려움보다 통증이 더 컸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택시를 탔다.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간호사는 없었다.


그들은 내가 중국어를 못 한다는 걸 알고
한참을 상의하더니
한 의사의 진료실로 데려갔다.


더 이상 서 있기 힘들어지는 순간,
그는 나를 붙잡아 주었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진료실 안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는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이었다.


진료를 마친 그는
옥스퍼드 중영사전을 펼쳤다.

나도 가방에서

휴대용 옥편을 꺼냈다.


나는 배가 아프다는 말을
영어와 몸짓으로 했고,
그는 언제부터 아팠는지,

무엇을 먹었는지를
사전을 뒤져가며 물었다.


피검사와 대소변 검사를 마치고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그는 약을 주고 링거를 놔주었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진료실은 조용했고,
그는 가운 대신 사복을 입고
내 옆에 앉아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나를 깨울 수 없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리 적어둔 영어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환자식과 약을 먹어야 한다.
-괜찮다면 자기 집에서 죽을 끓여주겠다.
-병원 옆 기숙사에 산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에 밀려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로 가는 길을 걸으며

나는 대학생이고 배낭여행 중이라 말했고,
그는 의대를 졸업한 지 2년 된 의사라고 했다.


사실 내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병원에서 그나마 영어를 할 수 있어
나를 맡게 되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의 기숙사는 병원에서 멀지 않았다.
깨끗한 2층 건물의 작은 원룸이었다.

화장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침대는 단정했다.


창밖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
이상하게도 더 높은 곳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쌀을 씻기 시작했다.

회색 벽과 하얀 셔츠의
그의 뒷모습이
따뜻한 안정감을 주었다.


쌀 씻는 소리에
내 배에서 나는 소리가
묻히는 것도 좋았다.


그의 방에는
의학서적이 많았지만
영어 원서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한자였다.


그제야 왜 그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가족사진 속에서
그는 졸업가운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흰 죽이 완성되었고,
그는 찻잎을 띄운 찻잔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영어와 한자를 섞다 지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한국어를,
그는 중국어를 섞어 쓰기 시작했다.


죽이 먹을 만하냐고 묻기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맛이 드럽게 없어.”


그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나와 같이 웃었다.


서로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알아듣기에 충분했다.

낯설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우리는 주소를 주고받았다.

밖은 어두워졌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더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더 함께 있고 싶었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몰랐다.

목례를 해야 할지,
악수를 해야 할지도 몰라
어정쩡하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가 준 약 덕분인지,
그가 끓여준 죽 덕분인지
나는 점점 나아졌고
상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병원에 갔더니
우리나라에는 없는
전염성 장염에 걸렸다고 했다.

완치될 때까지 외출하지 말고,
식사도 혼자 하고,
수건도 따로 쓰라고 했다.


순간 사마르칸트의 그가 떠올랐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알고도 나와 함께 있었던 걸까.

고마움이 늦게 와서
더 무거웠다.


시간이 지나
나는 졸업했고, 이사를 했다.


그 고마움은
시간에 밀려 세월에 덮였고,
그렇게 지금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전염병과

그 전염병 속에서
순직한 한 의사를 떠올린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편지함을 뒤져본다.


주소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전염병이 돌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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