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순간 -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이 하고 싶은 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유화를 그려보았다.
그리다 보니 그림이 더 좋고
좋은 그림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글도 쓰고 싶었다.
나는 백 명의 조언보다
한 권의 책에서 더 큰 위로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일은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조용한 기둥이었다.
그래서 그저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것들은 나를 '신나게' 하지는 않았다.
생각만 해도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기분.
내가 진짜 설레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패들보드.
어느 날 TV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바다 위에 누워
패들보드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
누울 수 없는 바다에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
그것은 세상에 대한
반항이나 저항이 아닌
순응 같았다.
동행 같았다.
힘껏 팔을 휘저어야 떠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그저 몸을 맡긴 채
물결에 실려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좋아 보였다.
지난여름, 양양 서피비치에 갔었다.
사람들은 모래사장에 엎드려
바다 위에 떠 있기 위한 여러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아, 나는 누워만 있고 싶은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바다가 좋을까,
왜 바다에 떠 있고 싶은 걸까.
그리고 곧 깨달았다.
바다는 내 인생의
피난처였고,
보상이었고,
위로였으며,
이상향이었다는 것을.
대학 시절부터 여름마다 바다로
여행을 갔다.
남해로, 동해로, 서해로
함께 간 사람들은 늘 달랐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수영하고
모래성을 쌓고
누군가와 걷고,
키스하고,
꼭 껴안고,
해변에 누워 불꽃놀이를 보고
미래를 얘기했다.
신혼에 갔던 코사무이에서의
바다가 보이는 자쿠지,
열대어가 지나가는 스노클링은
천국 같았다.
결혼초 돌도 안된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 갔을 때는
육아에 지쳐 있었기에
바다와 파도 앞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나의 인생도
반짝반짝 빛날거라고.
또 오라고.
자기는 여기에 계속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해 주는것 같았다
한 달씩 다녀온 해외여행지에서도
나는 늘 해변을 찾았다.
어느 나라의 해변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바다에 내가 오래 머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힘들게 수영하지 않아도
파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고
바다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패들보드.
인생의 여러 굴곡에서
몸에 힘을 빼고
순응하려고 노력했다.
살아가면서 모든 상황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해도 되지'
하며 삶을 받아들이려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바다도 그렇지 않을까?
어느 날은 파도가 좀 거칠기도 하고,
햇살은 뜨겁기도 하고,
날은 춥기도 할 테지만
좀 그러면 어떠랴
언제 인생이 편하기만 했어.
그래도 자식 키우는 것보다 힘들겠어!
...아닌가.
어쨌든 나는 간다.
밀려오면 밀려오고,
잠잠하면 잠잠한 대로
나는 올여름에
바다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패들보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