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날이었다 -
5분만 내려가면 하산이었다.
영하 14도였고
3시간 동안의 새벽 등산이었지만
나는 계획한 대로 새해 첫 해를 봤고,
기분 좋게 사진도 찍었다.
올해는 뭔가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작년보다 건강해진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었다.
해를 보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거의 앉아서 내려왔다.
이제 10m만 내려가면 비교적 평평한 곳.
나는 마음을 놓으며
거친 내리막길의 마지막 발을 내디뎠다.
낙엽이 폭신하게 있는 곳에
마지막 발을 디딘 순간,
낙엽 밑에 땅이 얼어 있음을 직감했다.
3시간을 수고한 등산화도
낙엽과 얼음의 콜라보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발목은 미끄러지며 접질렸고
그대로 3m쯤
슬라이드를 타듯 미끄러졌다.
발목이 너무 아파 그대로 멈췄다가
좌우로 구르며 소리쳤다.
아… 아파.
남편은 놀라 잠시 나를 살펴보는 듯했고
나는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떼굴떼굴 굴렀다.
얼마쯤 지났을까.
남편은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며
나를 업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의 배낭을 메고,
그런 나를 남편은 업었다.
혼자 내려가기도 힘든 그 길을
남편은 100m쯤 내려갔다.
하지만 내가 견디질 못했다.
배낭은 무거웠고
울퉁불퉁한 땅을 지날 때마다
골절의 날카로운 통증 위에
쇠공이 한 번씩 부딪치는 듯한 통증이 더해졌다.
나는 내려달라 했고
119에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 전 등산 중
정상 부근에서 헬기를 기다리던 부자를
본 적이 있었다.
이게 내 일이 될 줄이야.
다행히 거리가 짧아
헬기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구급대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쳤다.
누군가는 저체온증을 염려해
핫팩을 건네주었고,
누군가는 액땜 제대로 했으니
올해 잘 풀릴 거라 했다.
또 어떤 분은 낙엽들을 모아 덮어주며
한참을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발목은 돌덩이를 매단 듯
무겁게 짓눌렸고
몸은 너무 추워
고장 난 모터처럼 떨렸다.
그렇게 1시간 후,
6명의 구조대원의 들것에 실려
1시간 같은 10분을 내려와
병원으로 갔다.
공휴일과 주말이 겹쳐
수술은 6일 후에야 가능했고,
하반신 마취와 수면 마취 속에
잠든 채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오늘,
의도하지 않은 계기로
달라진 나와 내 주변을 본다.
수술 일정을 잡은 뒤
두 달간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막막했다.
집안일은?
화장실은?
아! 명절과 가족여행은?
이 많은 걱정을 밀어낼
좋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도망갈 구석이 필요할 때마다 숨었던
글들을 들고
브런치에 문을 두드렸다.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크게 잃는 게 있으면
작게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며칠 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림문자를 받았고,
서랍 속에 있던 글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 지루해질 뻔한 날들을
두근거리는 날들로
보내게 되었다.
작은 게 작은 게 아니게 된 사건.
부러진 발목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