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도 세대주가 아니었다

- 기록되지 않은 나에 대하여 -

by 재인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세대주였던 적이 없다.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내 이름은 언제나

누군가의 아래에 있었다.


스물세 번의 이사 끝에
나는 ‘○○의 배우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의 자녀’로 적혀 있었다.


나는

누구의 자녀였고,

누구의 아내였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맨 끝에 서 있었다.


가장 큰 손녀였지만

상주명단의 마지막 줄.


아들 다음,
며느리 다음,
딸 다음,
사위 다음,
손자 다음,


그리고 손녀 중에서도
외손녀이기에

가장 마지막이었다.

그 자리가 이상했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다.

집 안에서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여자가 많은 전공을 했고,
여성들이 대부분인 직종에서 일했다.


성별에 따른 차별은
내 삶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깨진 건

결혼 이후였다.

‘장유유서.’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그 문장들은
내 안에 배경화면처럼 깔려 있었다.


늘 켜져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말들.


나는 그것들이
나를 얼마나 단단히 묶고 있었는지
결혼 전까지는 몰랐다.


결혼 후 시댁 큰집에 갔을 때
나보다 먼저 들어온 며느리들이 셋 있었다.


다들 단정하고 교양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차가웠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도착하고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낮아졌어야 했다.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규칙은 분명히 존재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시부모님은 예고 없이
우리 집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오셨다.


“우린 널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를 정리하고

팬트리를 열어 살림을 재배치하고

거실의 가구들을 바꾸셨다.


남편이 가장 잘한 일은
나와 결혼한 것이라며
나를 예뻐하셨다.


그 말은 친절했고,
그 행동은 선의였다.


그러나 나는
점점 숨이 가빠졌다.


집에 있어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기계음이 어디선가 들리면

문을 보게 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흠칫 몸이 굳었다.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빨리 뛰었다.


가슴이 답답해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던 날들이
늘어났다.


남편의 소개로 찾아간 신경정신과에서
나는 공황장애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교회를 옮기고,
부모님과 거리를 두라고 했다.


병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다.


하지만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는 문장은
여전히 내 안의 배경화면이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나는
잘못된 사람 같았다.


경기도로 이사를 갔다.


교회를 옮겼다.


만남은
일주일에 한 번에서
격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그제야
숨이 조금씩 돌아왔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불행했다는 사실을.


같은 문화 안에서 자란 남편은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고통이었다.


현명한 동서는
일찌감치 부모님과 선을 그었다.


그 선택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건강해 보였고

부러웠다.


그 덕에
나에게 향하던 압력도 조금은 약해졌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공공연히 말한다.


아이들이 자라
집을 떠나거나 결혼하면,

일 년에 두 번만 만나도 충분하다고.


잘 지내고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더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이들의 배우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보지 않아도 좋다.


어쩌면
보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안의 배경화면은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


부모님은 여전히

“함께하지 못해 슬프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는 여전히
배경화면을 바꾸는 중이다.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가 아니라

‘네 부모를 떠나라’로.


‘장유유서’가 아니라


‘약자 우선’으로.


유교의 끝은


부모를 떠나는 순간이 아니라


죄책감을 내여놓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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