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너에게만은 늘 응답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by 퍼플수니

"엄마, 이번 어버이날에는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요. 용돈 좀 부칠테니까 아부지랑 맛있는 거 사드셔요."


늘 내 옆에 딱 붙어서 때가 잔뜩 탄 머스타드색 빈백에 반쯤 누워 엄마와 단둘이 가지던 독서타임이 제일 좋다던 큰 아이. 정말 지쳐서 내 육신이 공중으로 소멸될 것 같던 날조차 껌딱지마냥 엄마가 좋다며 늘 내 옆자리를 탐하던 아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단 나의 말에 서운함을 가득 담은 눈물을 눈가에 매단 채 자기 방으로 훽 가버리던 아이. 그 아이는 어느새 환갑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이 아이의 온 우주가 아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했다. 내가 큰 아이를 비롯하여 작은 아이의 온 세상이자 우주일 때는 그 타이틀이 힘겹고 지치기만 했다. 모든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엄마아빠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어서 "엄마! 해봐. 아빠빠빠바바 해봐."하며 한 번만 불러달라고 그렇게 애원하다가 아이가 말을 배우고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을 부르기 시작하면 도망갔다. 엄마 좀 그만 부르라고. 알아서 좀 하라고.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엄마 너네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그냥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거꾸로 그 아이들이 나의 온 우주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이 아이들에겐 나는 찬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들만 바라보는 나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예전의 나처럼.

그리고 이젠 수많은 광공해와 대기오염으로 찾기도 힘든. 그러나 분명 밤하늘에서 희미하게나마 그 자리를 지키는 별들을 헤는 것만큼이나 남은 온 정신을 다해 출가한 아이들의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문득 그런 큰 딸의 전화를 받고 나니 50여 년 전 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친정 아부지가 전화를 하셨던 일이 떠올랐다. 큰 아이는 자기를 봐달라 징징, 작은 아이는 뭐가 못마땅한 지 하루 온종일 온 집이 떠나가라 악을 쓰며 우는 것을 달래느라 에어컨을 틀고도 온몸의 땀구멍이 다 열린 듯 진땀을 뺄 때였다. 나의 두 귀가 제일 열심히 일하는 동시에 가장 혹사당하던 그때. 내 귀에 흘러들어오는 모든 소리가 음소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때.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압빱빠밥바'라고 저장한 나의 친정아버지의 전화를 보곤 무심히 핸드폰을 뒤집어 수신거부를 한 적이 있다. 우리 아부지는 내 전화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연락 없는 딸내미의 눈치를 보며 한 전화일텐데 난 단 5분도 아부지에게 내어줄 정신이 없었다. 물론 바쁜 일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죄송한 마음에 나중에 전화드리겠다고 짧게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챗바퀴같은 일상 속 연락을 잊고 한참을 잊다가 연락을 드린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아부지는 전화 벨소리가 채 세 번이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으셨다.


"그래.. 바빴냐?"


그간 재촉 전화 없이 기다리면서도 왜 빨리 연락 안 하나 언제는 아빠가 최고라더니 이젠 없어도 잘사나보내 하며 내심 서운했을 그 마음들을 담은 첫마디.


"어. 왜? 애들 보고 싶어서 전화했었어?"


난 분명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한 거였는데.. 그런 뿌루퉁한 아부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자식은 바쁜데 이깟 걸로 서운해하는 아부지한테 오기인지 뭔지 다정한 말투와는 거리가 먼 말투로 대꾸했다.


"그치... 뭐.. 우리 강아지들은? 밥은 먹었냐?"


그저 우리 아이들이 보고팠던 친정아부지는 무심하면서 전투적인 딸내미의 목소리에 먼저 백기를 드시고 한층 사그라든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오빠야 늦게 끝나고 나는 애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아직이지. 아빤? 집이야?식사는?하셨어?"


뒤늦게 칠십이 다 되어가는 아부지의 힘없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나도 안부를 물었던 것 같다. 정말 식사를 하셨는지 안하셨는지 궁금했다기보다는 힘없는 아부지의 목소리에 뭐라도 챙겨주는 느낌을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응. 오늘 쉬었다."


칠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몸 쓰며 현장 일하는 아부지는 온몸 여기저기 곡소리를 내며 쉬라며 아우성을 쳐댔던 것 같다. 그러나 늘 쉬면서도 불안감에 편히 쉬지 못하고 쉬면 죄짓는 기분이 드는지 쉬는 날이면 아부지의 목소리에는 주눅이 들어 자신감이 없었다. 누가 쉬지 말고 일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그렇게도 민망해하셨다. 그런 아부지에게 철없던 젊은 날의 나는 인심 쓰듯 영상통화로 돌려 내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작은 아이를 보여주었다. 자고 있는 작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신이 난 아부지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이 깊게 파인 주름에 주름을 확고히 더하듯 환하게 웃으며 연신 자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곤 "아이고 예쁘다. 아이고 예쁘다."만 반복하셨다. 늘 평생을 현장에서 일하며 난청이 온 아빠가 자신이 잘 들리지 않으니 늘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아 아이를 깜짝 놀래키는 것이 난 못마땅했다. 자는 아이의 이름을 반갑다고 그렇게 크게 부를 일인지. 그럼에도 며칠 만에 손주 얼굴을 보고 아이처럼 웃는 아빠를 보며 내 입가에도 미소가 잠깐이나마 스쳤다.


"아이.. 아빠 목소리 좀 낮춰. 애기 재우느라 힘들었어. 애 깰라."


"그래. 그래. 얼굴 봤으니 됐다. 들어가. 끊어."


나의 작은 타박에도 눈치를 보며 한참을 봐도 성에 차지 않을 우리 작은 아이의 모습을 연기가 가득찬 수정구슬처럼 뿌연 두 눈동자에 황급히 담아내며 전화를 끊으셨다.


큰 아이와 통화하며 문득 그때의 철없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이면 끔뻑 죽는 우리 아부지한테 하루 일과 끝에 눈치보며 전화하셨을 모습이 이제야 눈에 선하다. 몰랐을까. 그땐.


하지만 더이상 응답하지 않는 그 전화번호.

"압빱빠밥바"라고 저장된 그 전화번호를 몇 십 년 째 나는 내 전화번호부에서 지우지를 못했다. 작은 아이가 군대를 다녀오고 몇 해 지나지 않았을 그 해.

처음에는 허한 마음에 그 응답하지 않는 전화번호를 몇 번이고 눌러보기도 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확인 후 걸어주십시오.' 이 멘트 후 삐소리가 들리기 직전에서야 끊기를 몇 해동안 반복하였다. 하지만 그 몇 해마저도 더 지난 시간 후에는 더이상 전화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아부지의 전화번호를 써서 전화를 받아버릴까봐. 나에겐 그 전화번호는 영원히 아부지 전화번호여야했으니까.


우리 아이들도 내가 가고 나면 이렇게 마음이 허할까.

마치 내가 우리 아이들의 온 우주일 때는 그 우주였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르고 소비했던 철없던 나처럼. 인생의 타이밍이란 늘 이런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나와 남편을 그리며 그때 조금 더 다정해 볼 걸 죄송한 마음에 지금의 나처럼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으면.

그래서 오늘도 서운한 감정을 숨긴 채 맥없이 건강하고 밥 챙겨먹으라는 잔소리만 해대며 전화를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