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취

한 여름날의 프루스트 현상

by 퍼플수니

푸욱 찌는 여름, 난 미처 한 밤을 꼬박 채우지 못하고 푸르스름한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옛 어른들이 "나이 먹어봐. 있던 잠도 달아나." 그 말이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그 말에 인이 박이듯 내 뇌 안에 어떠한 생체리듬체계에 변화를 준 것일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초저녁 잠은 많아지고 새벽 잠은 발 달린 산짐승처럼 점점 빠르게도 달아났다.


날이 더워 그런지 온몸에 땀냄새인지 노인냄새인지 모를 쾌쾌한 냄새들이 폴폴 풍기는 듯했다. 도무지 샤워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침대 옆 보조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문득 젊은 시절에 풋풋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렇게도 귀신과 깜깜한 밤을 무서워했던 나는 집안일과 육아가 끝난 늦은 저녁 무렵 일 끝나고 늦게 와 눈이 가물가물 감기는 남편을 보초 세우고 샤워가 끝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말고 꼭 거실에서 기다리라고 징징대던 나였다. 그럼 남편은 알겠다며 거실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곤 했는데 이 나이가 되니 정말 무서운 건 옆에 자고 있는 영감의 고롱고롱 거리는 숨소리가 멈출까였다.

그런 잡스러운 생각과 함께 근육이 다 빠져버려 힘 없는 두 다리에 온 신경을 쓰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람 빠진 풍선마냥 연골을 펌프 삼아 힘이 폭폭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화장실에서 한 동안 따뜻한 물을 맞으며 내 몸에 배어있던 체취를 부단히도 물에 흘러 보낸다. 체취를 덮으려 상큼한 레몬향 바디워시도 쓰면서.


샤워가 끝난 난, 푸르스름한 바깥 풍경을 조명 삼아 따뜻한 국화차를 끓여 티타임을 갖는다. 은은한 국화향과 새벽공기는 참 잘 어울렸다. 특유의 새벽 내음을 들이마시며 난 때때로 이렇게 차 한잔과 내 머릿속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기를 좋아했다.

내 1인용 월넛색 원목 흔들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나의 생각의 흐름은 또다시 젊었을 적, 아이들이 어릴 때 열심히 육아하던 그 시절의 나로 데려간다.



그 당시도 한 여름의 이른 아침이었다.

서른여덟에 사십 줄을 코 앞에 두고 큰아이와는 7살 터울로 늦둥이를 낳았을 그때.

첫째와 다르게 100일이 지나도록 새벽에도 수유를 해야만 잠에 들었던 둘째와 씨름하던 그때.

피곤에 절여서인지 아님 아직 출산 후 호르몬의 영향였는지 늘 몸이 피곤할 때면 날이 서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새벽 4시 40분부터 배가 고파 깬 작은 아이를 쪽쪽이로 달래 보려다 도무지 잠에 들 기색이 없던 작은 아이를 들쳐 앉아 수유를 했던 날이었다.

그 해 유독 더위가 기승하고 늦여름과 초가을의 팽팽하지 못한 기싸움에서 일방적으로 무더위가 지속되던 때라 잠깐의 시원함을 느끼고자 창문을 열고 자던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100일이 넘도록 누적된 피로에 시력이 많이 떨어졌고 한번 잠이 깨면 쉬이 잠이 들지 못했던 때라 둘째의 울음소리에 기상을 해야만 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보다 내가 4개월이 넘도록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수유를 한다는 사실에 왜 이렇게 화나던지. 엄마라는 한 책임감을 가진 인격체라기보다 살아있는 동물로서의 본능만 남아 수면욕구와 식욕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분하기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수유 후 작은 아이는 금세 잠에 들었지만 젖병을 빠느라 온몸을 써서인지 등이 축축하게 젖고 땀에 절어 있는 작은 아이를 안고 선풍기 앞에서 잠시 땀을 식혀준 다음 시원한 메쉬매트에 뉘이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엔 전날 밤 잔뜩 어질러놓은 짐들로 그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곡을 다녀온 후 그대로 방치한 새빨간 아이스박스와 전날 씻지 않고 그대로 던져둔 젖병들까지. 아이가 일어나면 청소할 틈이 없기에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청소를 끝냈던 그날이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탓인지 금세 내 온몸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얇은 면원피스가 온몸에 쩍쩍 붙는 찝찝함에 씻을 겨를도 없이 배까지 걷어올리고 누워 잠을 청하려 눈을 감는 순간 '카톡'하고 메신저 알람소리가 안방의 적막을 깼다. 그 새벽에 누구한테 온 카톡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작은 알람소리에 깬 작은 아이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공식적인 하루 일정을 알리던 그 보채듯 우는 소리. 그 울음소리에 얼마나 숨이 막히고 짜증이 나던지 속이 부욱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재빨리 침대와 맞닿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혹여나 작은 아이 때문에 큰 아이도 깰까 얼른 들어앉아 달랬지만 곧 바닥에서 자던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보채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몸을 뒤척이며 이불로 자신의 귀를 막았다.


"아가 이리로 올라와. 쓰담쓰담해줄게."


등교 준비를 하기 전 20분 정도 더 잘 수 있던 큰아이를 부르자 애착베개를 껴안고 침대로 올라왔다.


"애기 때문에 시끄러워!"


큰아이는 볼멘소리를 하면서 튼실한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털썩 누웠다. 아이가 내 몸에 의지한 채 누워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 났던 그 마음은 가라앉고 이내 평화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50여 년째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 냄새들이 내 코 끝을 찔러댔다.


먼저 내 가슴에 팍 묻혀 안긴 작은 아이 머리에선 쉬어버린 옥수수냄새와 달큼한 딸기잼 같은 냄새가 선풍기 바람을 타고 내게로 왔다. 작은 아이의 목에 묶어 놓은 수건에서는 토냄새와 침냄새가, 밤새 묵직이도 싸놓아 퉁퉁 불어버린 기저귀에선 오줌냄새도 진동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내 코 앞에 야무지게 쥐고 있는 조생귤만 한 작은 아이의 주먹에서는 쾌쾌한 먼지냄새, 침냄새, 토냄새가 한데 섞여 오묘한 냄새를 풍겼다. 다행히 큰 아이는 그런 젖비린내 냄새들을 졸업하고 사뭇 어린이다운 어린이가 되어있었지만 작은 아이에서는 나지 않는 입냄새와 침냄새 그리고 밤새 흘린 땀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냄새들은 매미마냥 달라붙은 나이 아이들이 내 몸과 옷에 그득 묻혀 그게 곧 나의 냄새가 되어버린다.

온갖 냄새가 난무하던 그 여름날의 새벽 냄새.


내 몸을 베개 삼아 자던 아이들의 그 모습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고 불쑥불쑥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엄마한테 매달린 채 아기한테서 어렴풋이 아기 냄새가 날 때, 또는 엄마와 산책하며 유모차 안에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초롱초롱한 아기의 눈망울을 볼 때, 식당 안에서 아기 의자에 앉혀져 자신의 앞에 있는 음식을 주무르는 아기를 볼 때마다 우리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이 불쑥 지나간다.

젊은 시절 아기를 안고 산책하다 만난 노인이 탁한 눈동자를 고정한 채 빤히 우리 아이를 쳐다볼 때 저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며 우리 아기를 보나 궁금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기를 통해서 내 아기의 어릴 적을 회상한다는 사실을 안다.


어쩌면 챗바퀴처럼 일생에 반복되는 사람의 쾌쾌한 체취는 끝끝내 누구에게든 각인되는 노스탤지어가 아닐지.

그렇다면 이것은 체취일까 향수(鄕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