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랄라
노래 부르며 산 넘어 물 건너가는 길
가을길은 비단길
난 꽤나 어렸던 시절부터 가을이라는 계절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아득히 먼 유년시절, 유치원 선생님이 예쁜 앞치마를 입고 '가을길'이라는 동요를 건물 전 층이 울리게 피아노를 치시면 그렇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어렸던 아이는 집에 와서도 가사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가을 모습을 상상하며 가을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갔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해 갈수록 가을은 눈을 통해 들어와 가슴으로 스며드는 빈도가 잦았다. 낙엽 한 닢에 푸른색부터 붉은색까지 담고 있는 신비로움도, 바삭 말라 나의 무심한 발걸음 하나에 지체 없이 바스러지던 낙엽도, 그러다가 비라도 올 적엔 비내음과 낙엽내음이 온 길가에 한데 섞여 은은하고 쓸쓸한 거리를 만들 적에도 난 충분히 가을을 느끼기 위해 애를 쓰곤 했다. 때로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코 끝에 선선하게 스치는 가을바람을 느끼며, 알로록 달로록한 잎이 무성한 나무를 바라보며 가지각색의 가을을 흠모했다. 어쩌면 나름의 방식대로 추모를 한 것일지도.
그러다 중년이 넘어가며 내 생에 몇 번의 가을이 남았을지 곱씹어보곤 했다. 그 짧디 짧은 가을을 추모하기도 아니 흠모하기도 바쁜 계절에 나에게 몇 해의 가을이 남았을지 헤어짐을 염두하느라 얼마나 많은 가을을 소비하고 말았는지 모른다. 어설피 마지막 잎새나 떠올리면서.
언제가 마지막 가을일 지 모르는 가을을 미리 기약하느라 어쩌면 가을이 아닌 미래의 나를 추모하고 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흔 번의 가을이 오도록 가을은 반복되었고 마지막을 생각하느라 즐기지 못한 이 가을은 해마다 더없이 붉게 타오르며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이천칠십칠년 시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