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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책읽기 노트

#창업가 #CEO #리더 #경영 #베스트셀러 #회고

by Alicia in Beta

그 동안 초기 스타트업의 C레벨이자, 실리콘밸리 기반 스타트업의 Product Manager로 일하면서, 제품과 팀을 동시에 책임지며, 전략과 실행, 문화까지 매일같이 고민해야 했다.


빠르게 부딪히고 결정하며 쌓인 경험은 많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 내 안에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런 경험들을 돌아볼수록, 나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하고 팀을 더 잘 이끌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 질문의 끝에서『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만났다. 이 책은 단순한 경영 지침서가 아니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고민의 파편들을 구조화하고, 제대로 꺼내어 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는 현실적인 가이드였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읽고 넘기기보다, 내 경험과 연결해 다시 돌아보며 글로 남기고 싶었다. 이 글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읽으며 되짚은 나의 경험을 정리한 독서 노트이자 회고에 가깝다.






수신함을 비우지 못하면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게 되고, 결국 믿을 수 없는 리더가 된다.


4장. 수신함 비우기


책에서는 이메일을 예로 들지만, 나에게는 ‘슬랙’이 곧 수신함이었다. 여러 조직을 이끌며 매일 수백 수천 개의 메시지 속에서 일했다. (낮이건 밤이건 빠르게 모든 메시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슬랙 메시지도 이메일 수신함처럼 다뤘던 것 같다. 가능하면 멘션되는 즉시 처리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리마인더, 개인 태스크 보드로 넘기는 방식으로,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고 의사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려 했다. 이건 단지 툴의 문제가 아니다. 리더로서 크든 작든 일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신뢰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바쁨에 치여 기본적인 걸 놓치기 쉽지만, 늘 정리 정돈부터 습관화 하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면, 그건 문서화할 때가 된 것이다."


7장. 두 번 말하고 있다면 문서화하라, 19장. 폴더 시스템과 위키


어느 팀에서든 위키를 사랑하는 문서충(?)으로 활약했는데, 특히나 이 챕터는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다국적 동료들과 일했던 내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유일한 Product Manager로서 미국 팀과 시차를 넘나들고, 영어와 한글을 오가며 제품을 설계하고 치열하게 논의했던 그 시간들. (의외로 시차가 제일 힘들었다.) 단지 언어만 다른 게 아니라 표현 방식, 문화적 맥락, 일 처리 속도와 기대치까지 전부 달랐다. 같은 단어라도 이해하는 맥락과 배경, 문화가 달랐다. 그래서 문서화는 ‘기록’이 아니라 ‘공통 언어’였다. 그리고 오버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였다. 위키에 정리된 문서 하나가 하루를 단축시키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였고, 회의의 생산성을 높였다. 매번 만나서 얘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맥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글로벌 환경에선 필수이자 생존의 조건인듯 하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리더십도 사라진다.


정신없이 일만 하던 어느 날, 처음으로 번아웃이 찾아왔다. 공황 증세와 면역력 붕괴, 그리고 잃어버린 수면. 그제야 ‘내가 아프면 회사도 아프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나 하나의 희생으로 팀이 잘 돌아가면 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안다. 리더일수록 더 강해 보이기보다 잘 쉬고, 잘 챙겨야 한다는 걸. 그리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게 죄악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모든 정보를 팀과 공유하라."


14장. 투명한 소통


내가 리더로서 지향했던 소통은 ‘나만의 방식’이 아니라 ‘팀 전체의 기본값’이었다. 특히 업무적인 소통만큼은 투명하게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소통이 닫혀 있으면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말하고, 같은 내용을 또 문서화해야 한다. 반면, 투명하게 공유된 정보는 신규 입사자의 온보딩 속도를 높이고, 팀 전체의 맥락 이해도를 끌어올리며, 협업의 효율을 높인다. 이것은 ‘리더가 친절해서’가 아니라, 빠르고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한 구조의 문제였다. 투명함은 결국 생산성이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묻지 말고,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물어라."


15장. 의식적 리더십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내가 ‘공개 회고’를 자청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중요한 판단에서 실수가 있었을 때, 나는 회고 채널에 직접 원인과 맥락을 정리해 공유했고, 그 과정에서 신뢰는 더 깊어졌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겸손이나 자책의 문제가 아니다. 리더는 누구보다 빠르게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회고를 단순한 복기에서 끝내지 않고 개선 아이디어와 실행 플랜, 그리고 ‘어떤 마인드셋을 가질 것인가’로 연결하려고 했다. 특히나 Growth Mindset은 실수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의 기본 소양이다. 회고는 그 출발선일 뿐이다. 그리고 리더부터 먼저 나서서 실제 행동 해야한다.




"문화는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고객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정의한다."


18장. 조직문화


나는 '일-사람-문화'를 경영의 3대 축으로 여겨왔다. 초기에 일이 우선인 듯 보여도, 결국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팀은 오래 못 간다. 그리고 그 문화란, 회식의 빈도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구조, 결정의 속도와 기준 안에 숨겨져 있다. 조직문화는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배어있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기.


20장. 목표 관리 시스템


스타트업에서 처음 OKR을 도입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낯설고, 나 역시 불안했다. 형식에만 얽매이다 보니 전사 공감도 떨어졌고,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 실패 덕분에 이후에는 팀 단위로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목표 관리 방식을 설계할 수 있었다. 도구보다 중요한 건 ‘왜 이걸 하는가’에 대한 합의다. 그리고 책에서도 언급하듯 방향과 현황은 시각화가 중요하다.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 그게 책임자다.


21장. 책임 영역(AOR)


책임영역(AOR)은 단순히 이름을 올려두는 역할 분장이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안고 가는 사람, 결과까지 책임지는 구조다. 나는 이를 ‘매듭을 짓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한국식 표현으로 ‘매조지’ 문화라 설명하곤 했다. 그만큼 AOR은 신뢰의 구조다.

하지만 ‘책임자(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DRI)’라는 단어는 조직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위계 중심의 조직에서는 ‘책임자’라는 말이 곧 잘못의 화살을 맞는 사람, 혹은 '누가 책임질 거냐'는 책망의 대상으로 오해되기 쉽다. 실제로 권한은 주지 않은 채 책임만 지우는 구조도 여전히 많고, 그 결과 누구도 앞장서려 하지 않는 풍경이 익숙하다. 그래서 AOR은 그런 구조와는 정반대여야 한다. 책임은 곧 실질적인 권한과 연결되어야 하며, 성과가 나왔을 때 그 책임자에게 정당한 인정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위 리더일수록 책임과 권한, 위임의 기준을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일에 주도성을 갖고, 기꺼이 책임을 맡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회의는 일의 일부가 아니라, 일 자체다.


내가 한때 ‘회의 그라운드룰 병’에 걸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회의가 많아질수록 팀은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회의 전 준비, 회의 중 흐름, 회의 후 후속 조치까지 세분화해서 점검하는 게 습관이 됐다. 요즘엔 AI 툴을 적극 활용해 회의 후 요약, 액션 아이템 정리도 자동화하고 있다. 회의는 사실 본질을 다루는 시간이다.







우연히 접하게된 도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쭉 읽으며 그 동안 시행착오로 쌓인 나의 경험을 되짚고, 책을 통해 구조화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꽤 의미 있었다. 리더십의 영역 또한 과거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 배우고 도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치열한 스타트업에서 조직과 팀을 이끌며 고민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도 연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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