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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되었지만, 리더십은 나중에 따라왔다

제 1 화. 나는 왜 ‘윗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나

by Alicia in Beta


리더십은 직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택으로 쌓여간다.
나는 왜 '윗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는가?
권위 대신 신뢰를 택했던, 첫 리더 경험의 기록



처음 리더라는 포지션을 맡게 된 건 마케팅 팀장 역할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경험이 많았던 것도, 리더로서의 자질이 뚜렷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시점에 누군가는 그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게 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부족한 점은 더 많았고,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단지 포지션 하나로 내가 누군가의 ‘상사’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게 어색했다.

그 자리는 아직 나에게 과분했지만,

그렇다고 "저 아직 준비 안 됐어요"라고 내 입장만 생각하며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그 때 처음 깨달았다.
리더십이라는 건 '되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되자마자 만들어 가야한다'는 걸.

그리고 그건 스스로 얻어가고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책임을 맡은 이상 방향을 정하고, 구조를 설계하고, 사람과 일을 이끄는 역할은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포지션 하나로 내 말이 무게를 갖게 되는 건 여전히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내가 가장 싫었던 건, 우리 조직이 겉으로만 수평적인 척하는 것이었다.

분위기는 캐주얼하지만 모든 결정은 '윗사람'의 권한이고, 팀 동료를 '부하 직원'이라 생각하고, 동료가 의견보다 눈치를 먼저 보는 구조.

나는 그런 모순을 상징하는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말하는 가치를, 내가 먼저 실천할 수 있을까?""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지향하는 문화를 내가 가장 먼저 살아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이 첫 직장인 동료들이 있었다. '나'라는 리더를, 사회생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들에게 최고의 리더는 못 되더라도, 최악의 선배로 남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나 진짜 별로인 리더랑 일한 적 있었는데…” 이 회상 속 반면교사로 내가 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윗사람처럼 말하기보다 함께 고민하는 사람으로 남으려 했다.
권위 대신 신뢰를, 앞에서 이끄는 것보다 옆에서 밀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이 방식이 언제나 잘 통했던 건 아니다.

결정이 늦어지거나, 책임이 모호해지고, 나만 오래 고민하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리더십이 나답다고 느낀다.

리더라는 자리는 타이틀로 주어졌을지 모르지만,

리더십은 매일의 선택과 태도 속에서 조금씩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그 때 처음, 그리고 아직도 계속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나는 그때, 정말 부족한 리더였다.

경험도 없었고, 준비도 미흡했고, 팀 전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다.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싶은 장면들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불킥 할만한 기억도 많다.

가끔 그 시절의 동료들을 떠올리면 먼저 드는 감정은 고마움보다 미안함이기도 하다.


아마 그 마음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완성된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상사, 불편한 동료로 남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늘 열어두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글들은 어떤 정답보다도

그저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해보려 했다’는 과정을 솔직하게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스타트업리더십 #한국에서 실리콘밸리식 리더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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