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말했는가'를 넘는 리더십

제2화. 리더다움을 증명하기보다, 팀이 작동하게 만드는 방식

by Alicia in Beta


리더십은 타이틀이 아니라,
내가 나임을 매일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 여성이라는 것, 업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이 조건들은 나의 리더십에 늘 조용한 물음표를 달았다.


말하지 않아도 풍기는 분위기, 회의에서 머뭇거리는 시선, 일보다 사람부터 설득해야 했던 순간들. 실수를 하면 "역시 어리다"는 말이 나왔고, 잘하면 "경험에 비해 잘한다"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단호하면 예민하다고, 유연하면 우유부단하다고 했다. 내 의견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누가 말했는가'로 해석되었고, 그 '누구'가 바로 나였기에 나는 자주 나를 입증해야 했다.


처음엔 억울함도 컸다. 말보단 결과로, 감정보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방어하려 애썼고, 때로는 괜한 트집을 잡지 못하게 실력으로 증명하려는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그 때는 그게 최선이라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내가 감정에 갇혀 있었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감정적으로 받아치는 방식만으론 오래 갈 수 없다는 걸. 나의 성장에 절대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이 싸움을 계속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람의 성향보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걸.


특히 임원이 되고 나서는, 그 장벽이 더 선명해졌다. 조직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고, 유일한 여성이며, 실무 출신의 임원. 타이틀은 주어졌지만, 오히려 더 철저히 입증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팀이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사람을 설득하기 보다 일의 방식이 설득력을 갖도록 구조를 정비했다. 문서를 남기고, 사용자와 데이터 중심으로 토론하고, 의사결정을 명확히 하는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다. 작게라도 반복적인 업무는 시스템화하고, 불필요한 해석을 줄이는 '일하는 기준'을 만들고자 했다.


시스템은 사람보다 오래가고, 구조는 감정보다 냉정하다. 또한 구조가 있으면 결국 일은 돌아간다.

그 사실을 믿었기에, 조직이 감정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일의 기준을 설계하고자 했다.


그 결과,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는 팀 위키(wiki)에서 가장 많은 글을 남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기록은 단순한 정리를 넘어서, 누가 말하든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리더십의 형태였다.


무엇보다 나는, '누가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말했는가'가 힘을 갖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보다 일이 기준이 되고, 직함보다 기준이 말하는 구조. 누구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팀.

그게 내가 조금씩 만들어가고 싶었던 조직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한계도 많았다.

회의를 마친 뒤 혼자 남아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를 되뇌던 날들. 다들 웃는 사이, 나는 그 웃음 뒤에 숨은 신호를 읽느라 지쳤던 시간들. 그래도 자리에 돌아와 다시 문서를 만들고, 기준을 다듬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우회도 결국 나를 만든 길이었다. 내 감정을 확대하기보다, 감정 없이도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세우려 애썼다. 조직을 설득하기 위해, 매일 나만의 방식으로 리더십을 실험했다.


나는 여전히 완성된 리더가 아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실험하고, 회고하고, 다시 구조를 다듬는다.

매일 '나'라는 사람을 입증해야 했던 자리에서 결국 내가 지키고자 했던 건,

나 혼자만의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팀의 방식이었다.


해석보다 기준이, 감정보다 문서가, 위계보다 시스템이 힘을 갖는 조직.

하지만 그 시스템은 단단함보다는 유연함에서, 복잡함보다는 단순한 기준에서,

사람 하나가 아닌 팀 전체가 빠르게 실행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에서 출발했다.


스타트업의 리더십은 결국,

내가 앞이 아닌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판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사람에게서 만들어진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오늘도 계속 배우는 중이다.




#리더십 #여성리더 #조직문화 #심리적장벽 #위키리더십 #리더십성장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리더가 되었지만, 리더십은 나중에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