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몰입
회사를 지키고자 했던 몰입은 나를 성장시켰지만,
결국 함께여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스타트업에서 임원이 된다는 건, 때로 '회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자리였다. 내가 부족해 보이면, 회사도 부족해 보일까 봐 두려웠다. 실력이든 커뮤니케이션이든, 단 하나라도 허술하면 "역시 스타트업은 미숙해"라는 말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치열해졌다. 우리 팀, 우리 제품, 우리 회사를 입증하기 위해 나는 나부터 증명해야 했다. 누군가 실력 없다고 하면 더 공부했고, 설득력이 없다고 하면 끝까지 파고들었고, 투자자 앞에서도, 제휴사 앞에서도, 어떤 자리에서도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도록 나를 갈고닦았다.
나는 회사가 곧 나처럼 느껴졌다.
회사가 잘되면 나도 인정받는 기분이었고, 누군가가 회사에 비판을 하면 마치 나를 향한 말처럼 받아들였다. 성장은 곧 나의 책임이었고, 성과는 나의 존재 증명이었다. 그 몰입은 나를 빠르게 성장시켰고, 동시에 빠르게 소진시켰다. 나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나를 밀어붙였고, 그 안에서 성장과 소진을 동시에 겪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잘하는 리더'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는 방식은, 결국 나를 조금씩 소진시키고 있었다.
리더는 남 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게 있다면, 그건 뭔가를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채워야 할 숙제라고 여겼다.
팀이 작아서, 경험이 없어서, 여건이 부족해서...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내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았다.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일지라도, 결국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다.
어쩌면 그 생각이 나를 더 몰아붙였고, 한계마저도 실력으로 메우려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이 생겼다. 이렇게 계속 달리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모든 문제를 나의 부족함으로만 해석하는 태도가 진짜 조직을 위한 일이었을까?
책임감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책임이 나만의 몫처럼 느껴졌다. 회사라는 팀 스포츠에서 모든 포지션을 혼자 뛰려는 선수처럼.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혼자 앞서 가는 속도보다, 함께 걷는 방향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나 혼자 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함께 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고,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그 시간들은 분명 나를 성장시켰지만, 그만큼 나를 잃어버리게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와 '팀'의 경계에서 더 건강한 리더십을 고민하고 있다. 예전처럼 전부를 짊어지기보다,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 팀을 바라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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