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못 들어가서 안달인 회사에 들어갔으면 감사히 다녀라
어린 시절, 20대가 되면 당연히 명문대에 입학해서 교환학생을 가는 줄 알았고, 30대가 되면 자가와 자차가 있는 멋지고 평범한(?)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20대의 나는 방황과 혼란에 있었으며, 30대의 나는 아직도 진로를 고민한다. 고민을 하다 하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이면 결국엔 회피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2019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메이저 공기업에 취업했다. 신이 잔뜩 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하, 설레는 마음도 잠시였다. 신입 입문 교육을 받고 부서에 배치되자마자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됐다. 제대로 된 일을 해보기도 전에 시작된 괴롭힘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입사 교육 당시 상을 받았고, 감히 나도 못 가본 해외 교육에 선발되고, 나보다 키가 크고, 다른 사람들과 원만히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싫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인사를 안 받아주고, 사람들 앞에서 은근슬쩍 모욕적인 말을 하고, 개인사를 제3자에게 전하고, 나에 대한 평판을 좋지 않게 만들어서 고립시키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3년 반 동안 지속된 괴롭힘에 내 정신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반추해 보면, 그저 하루하루 버티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남들 다 걸리는 독감이라도 걸려서 회사를 쉬어봤으면'과 같은 생각은 점점 커져서, '출근길에 큰 덤프트럭이 내 차를 덮쳐줬으면', '회사에 불이 났으면'으로 치달았다. 나는 이전 회사 사람들과도 원만히 잘 지냈기에 직장 내 괴롭힘 따위에 면역력이 없었다. 그저 자책하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타인을 짜증 나게 하는가 생각하고, 울고, 힘들어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로 화를 냈던 날, 내 안의 뭔가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걸 알아챘다. 병원에선 우울증 약을 먹고 트라우마 치료를 장시간 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고 자부해왔는데, 이 정도로 우울증이라니 자존심이 상했고, 그 이유가 그녀라니 억울했다. 내 안의 증오감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고, 정작 가해자는 별다른 징계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휴직을 앞둔 어느 날, 한 선배가 괴롭힘당하던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한 것, 방관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왔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와 멈출 수가 없었다. '아, 그래도 미안해하는구나'가 아닌, 남들도 다 알고 있던 괴롭힘을 나만 혼자 참아냈던 것에 대한 서러움에 울었다. 배신감과 불신 때문에 울었다.
실패자,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 억지로 다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나 자신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서 '누구는 못 들어가서 안달인 회사에 들어갔으면 감사히 다녀라', '배부른 소리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 반골기질 스위치가 또 눌려버렸다.
더 이상 의미 없는 버티기는 그만이다. 이젠 뒤집기와 굳히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안 다니는 것도 아닌 애매한 휴직 상태에서 나는 퇴사 준비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