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적 허무주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충분한 삶을 원했을 뿐

by 냉라면

내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누군가는 부정적이며 예민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틀을 따라가는 것도 싫어하고, 학창 시절엔 정해져있는 수업 시간과 스케줄이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다.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참 많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보니 나 자체로 꽉 찬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childless cat lady라는 표현은 내겐 아주 긍정적으로 들리며, 바로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절대적인 종교적/도덕적 가치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고, 공허함 속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지프스는 끝없이 바위를 언덕 위로 굴려 올렸지만, 내려가는 길은 누구보다 즐겁게 행했다. 부조리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기 식대로 삶을 긍정하고, 반항을 선택한 시지프스의 내리막길은 신들도 어쩌지 못했다. 신이 죽은 세상, 그리고 부조리한 노동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시지프스. 나는 이 두 철학 속에서 ‘나답게 살기’라는 의미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노선을 이탈한 사람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교문화에서는 개인보다 집단과 화합, 자기희생을 강조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나 행복은 종종 이기적이거나 무례한 것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조화를 위해 자기 의견을 참아내야 하는 관계중심적 가치는 누군가에겐 폭력적이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짧고 기회가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해보고 싶은 것으로만 점철된 삶을 살기에도 아쉬운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에 나의 이상향이 타인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 오히려 쉽다. 예수도 안티가 세상의 반이라고 하질 않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형의 MBTI는 ISTJ 혹은 ISFJ라고 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선호하는 타입, 튀는 것을 꺼리고 IQ 순위는 높지 않지만 수능 성적은 1등이라는 유형. 반면에 한국에서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유형. 검색하자마자 새로운 도전과 아이디어를 즐긴다는 설명을 볼 수 있는 ENTP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기란 꽤나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언젠가 웹서핑을 하다 '통신사는 3사 중 비교해 보고 골라서 쓰시면서, 왜 나와 제일 잘 맞는 나라를 비교해 보고 그곳에서 살 생각은 안 하나요?'라는 댓글을 본 적 있는데, 지금도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다. 맞아, 내가 태어났다고 해서 여기서 평생 살리라는 법은 없지. 그 댓글은 마치 스파크가 튀듯 내게 영감을 주었고, 언젠가 나도 타향살이를 해보겠다는 꿈을 꾸게 해주었다.


자아가 강한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서 세상과 많은 싸움을 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어 발표를 하면 '나대는 애'로 보이고, 영어회화 학원을 가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살기란 너무 힘들었다. 자기표현이 곧 성숙함으로 간주되는 곳, 성 지향성이라든가 외적 요인, 나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곳에서 살았다면 조금 더 나답게 살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다녀온 해외여행에서 나는 답을 찾은 것 같다. 인파가 많은 공원에서 동성 연인이 스킨십을 해도, 남성이 형광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도 그저 자연스럽게 다니고 타인들도 눈총을 주지 않는 나라. 물론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고민거리나 걱정거리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선택지가 있다면 최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에, 나에게 최선인 나라로 이주를 할 계획이다.


마침 휴직 중이고, 남는 것이 시간이라 영어 공부와 이민 준비를 할 시간이 넘쳐나는 지금에 너무 감사하다. 삶은 허무하지만, 나는 그 허무를 유쾌하게 채우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반짝이는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만든다. 그것이 나의 낙관적 허무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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