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나아버렸어요

너가 선천적으로 예민해서 그래

by 냉라면

우울증이 낙인처럼 여겨졌던 예전과 달리, 요새는 다소 많은 현대인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병에 대해 공개적인 담론이 오가기도 한다. 서점에만 가도 우울증을 다룬 에세이가 줄지어 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도 힘들다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울증은 한 번 앓으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사실 회사에서든 어디에서든 나는 인간관계로 어려워하거나 적응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고, 금방 마음을 여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대단하고 유구한 한국의 공기업 문화는 그런 나를 병들게 했다.


어떻게든 남의 하자를 찾아내어(결혼을 제 때 안하거나, 아이가 없다는 이유마저 하자가 된다) 자신을 우위로 두려는 심리. 임금을 더 많이 주는 사기업은 깎아내려서 공기업에 다니는 내가 임금은 적을지언정 안정적이라 더 낫다고 셀프 위안을 하고(요새는 대기업도 안정적이다), 같은 공기업 안에서도 급을 나누며, 승진하는 사람을 후려치고, 열심히 해서 상을 받아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문화. 기혼 직원들은 서로 육아 관련 제도들을 어떻게 하면 편법으로 사용해서 이득을 볼 수 있는지 공유하다가, 육아단축근로를 사용하는 직원의 일을 떠맡게 되면 서로 손가락질을 하는 회사.


처음에는 작은 무기력에서 시작하다, 점점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버거웠고 쉽게 지쳤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부담스럽고, 머릿속은 늘 안개가 낀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가 쉽게 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가 내가 아닌 기분이 들었고, 회사에서도 겉으로는 사람들과 웃으며 잘 지내면서도 속은 썩어들어갔다. 휴직 신청을 했을 땐, 너가 우울증이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울증을 앓는 건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질 때문에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부풀려 받아들이는 거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다녀온 해외여행에서 답을 찾은 후 영어 시험에 매진했고 대학원에 합격했다. 우울증을 원인-결과형 우울증과 만성-내재형 우울증으로 나눈다면 나는 전자에 해당했기 때문에, 대학원에 합격하고 마음 편하게 퇴사를 지를 수 있게 되니 우울감이 사라졌다. 단약도 성공했고, 이제 남은 시간을 더 희망차게 보낼 수 있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 우울은 단순히 나의 결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우울이 그저 끝없는 늪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물론 우울증은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굉장히 다른 증상의 강도와 지속기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우울증이라도 누군가는 병원에 가지 않고 해결이 되고, 누군가는 크게 눈에 띄는 기복은 없어도 만성적인 기분 저하 상태를 앓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전적이고 만성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외부 요인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병이기에 내 글이 어떤 이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우울의 한가운데에서도 언젠가는 다시 숨 쉬고 걸어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하지 않는 힘든 환경 속에서 억지로 버티고 서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발걸음을 떼는 건 분명 어렵고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일단 그 발걸음을 내디디면 더 넓은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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