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꿈꾸기 좋은 나이

호주 간호석사, 지역선택, 최애 학교, 30대 유학 준비 이야기

by 냉라면

엄마와 생각 없이 떠난 호주 여행. 퍼핑빌리에서 증기 기관차를 타고 가다 본 동네 풍경에 눈물이 날 뻔 했다. 개를 산책시키다 지나가는 증기 기관차에 인사를 해줄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엿봤기 때문일까.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나름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빠르게 안정적인 삶을 일군 1인이었는데. 정작 내 삶은 왜 피곤하고 여유가 없고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수도.


언젠가 캐나다 이민을 같이 꿈꿨던 친구가 있었다. 둘 다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실천에 옮기진 못했었지만, 그 친구는 결국 스웨덴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살다 보니 배짱이 커졌는지 20대에도 내지 못했던 용기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던 지금에서야 내게 됐다.




근데 왜 하필 호주였을까? 엄마랑 한 달간 떠난 유럽 여행에서는 처음엔 너무 예쁘던 풍경들도 나중에 가니 다 비슷한 건물 같았고, 여행을 하고 구경하기엔 정말 좋지만 살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동부에선 노숙자와 더러운 거리, 항상 바쁜 사람들이 더 크게 와닿았고, 서부에선 어딘가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을 데쳤다가 얼렸다가 하는 한국 날씨도 한몫했던 것 같다. 한국처럼 여름철 습기가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거의 없고, 겨울에도 한국식 한파가 없어서 생활하기 편한 곳. 여름에 덥더라도 공기가 건조해서 '찐득한 더위'가 덜한 곳. 호주에서도 애들레이드와 퍼스가 나에게 맞는 느낌이었다. 브리즈번은 습도가 높고, 멜버른은 날씨 변덕이 심했다.




지역을 대충 정하고 3월부터 유학원 투어를 다녔다. 직업에 대한 어떠한 결정과 선호도 두지 않은 채 여기저기 돌아보다, 호주의 간호 석사는 비전공자도 가능하면서 RN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조건 경력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연봉도 나름 괜찮은 직업이다 싶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는데,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지역과 직업을 정하고 나니 학교 리스트도 대략 정리가 됐고, 학교 리스트가 정리가 되니 내가 가고 싶은 학교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네임밸류가 어느 정도 있으면서, 학교 시설도 꽤 좋은 학교가 최애가 되었다. 2월 입학이 아닌 7월 입학도 나한테는 딱이었다. 게다가 간호 석사는 장학금을 주지 않아도 학생들이 워낙 지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장학금을 안 주는 학교가 절대다수인데, 2년간 성적 장학금을 제공하는 것도 압도적인 장점이었다.


학교까지 정해졌으니 영어 점수가 필요했다. 살면서 영어 시험은 토익이 다였던지라, 스피킹이나 에세이 작성은 영 아는 게 없었다. IELTS와 PTE 중 고민하다 IELTS를 찍먹해 보고 바로 PTE로 돌렸다. IELTS가 신뢰도와 인지도가 높고, 공부하면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지만 나는 테크니컬하게 준비해서 빠르게 점수를 얻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8월 7일에 PTE 시험이 개편됐고, 8월 11일엔 최애 학교의 접수가 열렸다. 세상이 날 억까하는 것 같았지만, 김연아의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의 마인드로 정말 그냥 했다. 점수가 안 나올 때는 억지로 최애 학교를 흐린눈 하고 2순위, 3순위 학교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냈다. 그렇지만 최애가 왜 최애인가, 최애와 차애 사이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단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조급한 하루하루였다. 300명 이상 글로벌 학생을 뽑는 학교들과 다르게 여기는 단 38명만 뽑기 때문에(짜다) 날이 지날수록 가지 못할까 봐 피가 말랐다. 정말 PTE 관련해서는 차후 템플릿 정보와 함께 글을 써야겠다.




어쨌든, 지금에서야 소회를 밝히자니 짧은 글로 대신할 수 있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다. 키우던 고양이가 갑자기 아파 죽니사니 하느라 공부도 제대로 못했었고, 수술비로 천만 원 넘는 예상치 못한 지출을 했다. 지금은 옆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오늘, 최애 학교에서 최종 unconditional offer를 받아 학비까지 송금하고 나니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이사부터, 영어 실력까지 첩첩산중이지만. 그냥 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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