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한 내가 있고, 그런 나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무력한 내가 참으로 싫어지더라. ‘내가 싫다’는 생각, 참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나는 과연 뭘 했단 말인가', 싶었던. 커리어 하나 제대로 쌓지 못하고, 딴 주머니 하나 야무지게 차지 못하고, 그 많은 시간을 날려버린 것처럼 보이는 나는, 'OO야, 너는 도대체 뭘 한 거니?’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에게 이혼이란?
뼈 때리는 현실점검이다. 살 떨리는 현실점검이다.
밥벌이가 안 되는 일을 오래도록 하고 보니, 나 하나 먹고살만한 내 밥그릇 하나 없더라. 이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현실점검은 언제나 팩폭을 날리기 마련이지... 참으로 쓰디쓰고, 차디차다.
며칠 째 알바몬, 알바천국, 심지어 당근까지 기웃거려 봤다. 먹을 대로 먹은 중년의 나이에, 상할 대로 상한 건강과 이 저질체력에, 빈약한 커리어에, 돌쟁이 아기가 딸린 상황에 과연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왕이면, 재택근무면 참 좋으련만. 코로나를 거쳐왔으면 응당 재택근무(알바)가 활성화 됐을 법도 한데, 몇 페이지를 둘러봐도,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봐도, 없다. 딱히 없다. ‘아니, 현실은 왜 이리 트렌드를 못 좇아오는 거지?!!!!’ 혼자 구시렁 구시렁대다, 알게 된 진실은, 내가 가진 것이 별 거 없어서라는 점이다. '가진 것이 없다'라… 흔하디 흔한 대학 졸업장, 대학원 졸업장, 뭐 하나 쓸 만하지 않다. 내가 가진 패가 별 볼 일 없으니, 내게 돌아올 판돈 따위는 없는 것이겠지.
그러고 보면, 주부가 되어버린, 아기 엄마가 되어버린 내 친구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일선에서 뛰고 있나? 머릿속 회로를 아무리 돌려봐도 거의 없다, 가 결론이다. 내 가까운 대학 친구 중 한 명은, 아기 엄마로 주저앉은 지, ‘누구누구 엄마’로 불린 지 오래됐다. 솔직히 난 아까웠다. 어차피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여자사람의 직장생활 그 끝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사표를 냈노라고, 안정적인 9급 공무원 준비나 하겠다고 나서는 그 친구를 보면서, 난 생각했더랬다. '너무 아깝다'라고. 그러다 아예 공무원도 때려치우고 아기 엄마로 털버덕 앉아버린 친구를 보면서, '사회가 인재 한 명을 잃었다'라고, 난 속으로만 생각했더랬다. 참으로 아까비…
젊은 시절, 우리는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숱한 방황을 하면서 길을 나섰던 것일까? 대학시절, 40줄에 이런 모습일 거라고 그 모습을 그리며, 마음에 품으면서, 상상하며, 험난한 그 길을 헤쳐왔던 것일까?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젊은 시절, 어쩌고, 운운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속절없이 나이 먹은 중년 아줌마가 그저 푸념하는 소리일 뿐.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이 상태로는 양육권? 어림도 없다.
이혼을 하려면, 반드시 따라와야 할 경제권. 이것을 잃은 지 오래인 나는, 써 내려가지 못한 이혼신고서를 남몰래 가슴팍에 묻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