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 유치원을 못 나온 그의 슬픈 과거사를 듣게 될 줄이야. 그는 본질을 교묘히 흐리곤 한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 의도하지 않았단 걸 알기에, 더 부화가 나기도.
나와 그가 멀어지게 된,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내 마음에서 그가 멀어지게 된 연유에는, 이런 자리들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은 ‘나와 그’라는 한정된 관계 안에서 생각해 보지만, 보다 확장해서 들여다본다면? ‘인간관계’ 가운데,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의 부재가 갖고 오는 파장은 의외로 크다는 것이다. 때론 대참사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관계 안에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이란 무엇이 있을까? 다시, 나와 그의 관계로 돌아와 보면, 크게 3가지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미안해” “수고했어” “괜찮아?” 물론,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겠지, 싶다.
“미안해”는 늘 겪는 일이라, 내성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진실은... 아니라는 것! 내성이 영 안 생기더라.
“수고했어”는, 예상치 못할 때 내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곤 했다. 노산으로 아기를 갖다 보니, 자연출산이냐 제왕절개냐 갈림길에 섰었다. 나는 여러 연유로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남들보다 격하디 격한 입덧 시기를 지나 수술대에 올라 드디어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둘 뿐만 아니라, 양가에서도, 그리고 우리를 아는 지인들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여서 그 감격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남편은 유독 그 감격에 오래 잠겨있었던 것일까?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아기를 본 순간부터 수고한 아내는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의 세상에는 온통 아기만 있었다. 그 배신감이란!
누군가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에요? 산후 우울증 같은 것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 예를 더 들어볼까?
나름 큰 행사를 맡아서 치르고 온 날이었다. 3일간 이어진 행사 마지막 날, 직장상사에게 “잘했다, 애썼다, 수고했다”란 말 대신 처참히 깨졌다. 하필 그날은 비도 누적누적 내리던 날이었다.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를 충분히 알기에, 수긍은 갔다. ‘내가 이걸 완전히 놓쳤었구나…’ 내가 못 보고 놓친 것을 짚어주고 다음을 위한 보완점도 말씀해 주셨기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 감정적으로는 복잡 복잡했다. 많이 지쳤다고 해야 할까? 여기저기 아픈 상황에서 끌고 왔던 것이기에, 속도 복잡하고, 여러 모로 난 지쳐 있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콜록대며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이걸 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던 내게, 지쳐 들어온 내게, 그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런 그를 무심코 지나쳤던 내게, 갑자기 데자뷔처럼 과거의 일들이 쭉 지나갔다. 언제나 그는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었지, 단 한 번도. 옆자리에 앉은 동료끼리라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데, 그는 평생 동료일 아내에게 그런 말을 참으로 아끼곤 했다. 그에게는 ‘수고했다’는 단어 자체가 없는 건 아닐까?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이 생략될 때-그것이 어떤 연유에서든-, 이 관계도 결국은 생략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