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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날의 푸르름 Jun 27. 2024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의 부재가 갖고 오는 대참사

오랜 연애시절부터 내가 줄곧 해왔던 말들이 있다.

“오빠는 사과할 줄을 몰라?”



남녀 차이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남자들의 사과를 듣기란 이렇게나 어렵단 말인가! 남자들은 구조적으로 사과할 줄을 모르나? 아니면, 나는 사과할 줄 모르는 남자들만 골라서 만난 거야?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응당 사과해야 할 자리에서 그는 끝끝내 침묵으로 일관한다. 내 입장에서는 도피성 해외유학쯤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내 속이야!!! 답답증이 확 치밀어온다.


어느 날, 참다못한 나는

“오빠~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만 가도 요~만한 쪼꼬미들도 사과하는 법을 배워. 사과를 배운다고!”

“… 나, 유치원 안 나왔는데?”


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 유치원을 못 나온 그의 슬픈 과거사를 듣게 될 줄이야. 그는 본질을 교묘히 흐리곤 한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 의도하지 않았단 걸 알기에, 더 부화가 나기도.


나와 그가 멀어지게 된,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내 마음에서 그가 멀어지게 된 연유에는, 이런 자리들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은 ‘나와 그’라는 한정된 관계 안에서 생각해 보지만, 보다 확장해서 들여다본다면? ‘인간관계’ 가운데,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의 부재가 갖고 오는 파장은 의외로 크다는 것이다. 때론 대참사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관계 안에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이란 무엇이 있을까? 다시, 나와 그의 관계로 돌아와 보면, 크게 3가지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미안해” “수고했어” “괜찮아?” 물론,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겠지, 싶다.


“미안해”는 늘 겪는 일이라, 내성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진실은... 아니라는 것! 내성이 영 안 생기더라.


“수고했어”는, 예상치 못할 때 내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곤 했다. 노산으로 아기를 갖다 보니, 자연출산이냐 제왕절개냐 갈림길에 섰었다. 나는 여러 연유로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남들보다 격하디 격한 입덧 시기를 지나 수술대에 올라 드디어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둘 뿐만 아니라, 양가에서도, 그리고 우리를 아는 지인들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여서 그 감격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남편은 유독 그 감격에 오래 잠겨있었던 것일까?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아기를 본 순간부터 수고한 아내는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의 세상에는 온통 아기만 있었다. 그 배신감이란!


누군가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에요? 산후 우울증 같은 것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 예를 더 들어볼까?


나름 큰 행사를 맡아서 치르고 온 날이었다. 3일간 이어진 행사 마지막 날, 직장상사에게 “잘했다, 애썼다, 수고했다”란 말 대신 처참히 깨졌다. 하필 그날은 비도 누적누적 내리던 날이었다.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를 충분히 알기에, 수긍은 갔다. ‘내가 이걸 완전히 놓쳤었구나…’ 내가 못 보고 놓친 것을 짚어주고 다음을 위한 보완점도 말씀해 주셨기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 감정적으로는 복잡 복잡했다. 많이 지쳤다고 해야 할까? 여기저기 아픈 상황에서 끌고 왔던 것이기에, 속도 복잡하고, 여러 모로 난 지쳐 있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콜록대며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이걸 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던 내게, 지쳐 들어온 내게, 그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런 그를 무심코 지나쳤던 내게, 갑자기 데자뷔처럼 과거의 일들이 쭉 지나갔다. 언제나 그는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었지, 단 한 번도. 옆자리에 앉은 동료끼리라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데, 그는 평생 동료일 아내에게 그런 말을 참으로 아끼곤 했다. 그에게는 ‘수고했다’는 단어 자체가 없는 건 아닐까?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이 생략될 때-그것이 어떤 연유에서든-, 이 관계도 결국은 생략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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