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재택근무 이 주 차, 아이들 어린이집 결석 이주 차. 그리고 바깥 외출을 꺼린 지 거의 한 달. 잠시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재난이 지지부진하게 우리 집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덕분에 온 가족이 자발적(?) 가택연금을 시작 한지도 거의 이 주가 되었네요.
확진자는 오천명이 넘어가고 제가 사는 곳 근방에도 확진환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마치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식구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과 단절된 채 생활하는 중입니다.
삼시세끼 네 식구의 밥을 차리고, 호시탐탐 아빠의 업무를 방해하는 아이들을 붙잡아 놀아주고,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틈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놀잇감 사냥을 나선 지도 이 주가 되어갑니다. 언제 우리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까요? 이제는 '원래 일상'이라는 게 어땠는지도 아득할 지경인데요.
일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닫힌 문 안에서 우리 가족은 어느 때보다 밀도 있게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남편은 일할 때 어떤 모습인지,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더 좋아하는지, 등원 시간에 쫓기지 않을 때 보는 아이의 자는 모습은 얼마나 예쁜지. 이번 기회로 잠시 멈춰 내가 해야 했던 양육과 가사의 진짜 원동력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주부, 엄마로서의 의무보다 더 근원에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평일에 한 번도 모이지 못하던 우리 가족이 매일 하루 세 번씩 모여 앉게 되자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남편은 저녁 식사 겸 퇴근(?) 시간에 반주를 하며 회사생활의 애로사항을 평소보다 꽤 길게 이야기했어요. 아마 야근이 쭉 이어졌을, 그래서 하루 한 시간 얼굴 마주하기도 힘든 '원래 일상'이 평화롭게 흘러갔다면 결코 수면 위로 나오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말이죠.
이번 '코로나 19'라는 재난은 종식이 선언되더라도 우리를 이전의 우리로 돌려놓지 못할 겁니다. 매일 마주하는마스크를 쓴 삭막한 얼굴들, 뼛속 깊이 새긴 불안, 그리고 이기심에서 비롯된 인간성 대한 불신을 경험했으니까요. 아직도 우체국 앞에선 먼저 마스크 구매 줄의 새치기로 동네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날 겁니다. 원하던 일상을 회복할 테지요. 그러나 코로나가 스쳐지나간 후의 일상은 좀 다른 얼굴로 돌아올 겁니다. 모두를 불신하게 했던 꽃샘추위의 기간이, 가족이 부대끼며 겪었던 가택연금의 날들이, 그리고 친구의 안위를 묻던 안부 전화의 순간이 우리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을 테니까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마스크 없이 봄 공기를 만끽할 그날에는 지금 이 순간이 마음 속에 소중한 사람들을 담아놓은 씨앗으로 남아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