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 내내 평일과 다름없던 지난 주말,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던 오전, 사건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했다.
(이하 나=Mee, 헤=헤드헌터)
"지이잉~"
나 : 여보세요.
헤 : Mee씨죠? 저희는 헤드헌팅 회사입니다. 사람인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ㅇㅇ업체 지원하셨나요?
뭐지? 저번 주에 지원서 낸 곳을 얘기하는 건가? 다른 헤드헌터가 또 연락 온 거야?
나 : 네. 이미 다른 헤드헌터 분 통해 지원서 제출했습니다.
헤 : 아, 아쉽네요. 예상하긴 했지만 저희가 Mee 씨 이력서를 좀 더 빨리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 : 네...
주말 오전 이어서일까, 아무것도 얽혀있지 않은 관계라는 게 확인되어서 일까. 대화는 급속도로 편해졌다.
나 : 근데 사람인이나 다른 구직 사이트에 oo업체 공고가 하나도 안 올라와있던데, 헤드헌터 통해서만 사람을 구하나요?
헤 : 네, ㅇㅇ업체는 내부에서 구하지 않으면 구인을 헤드헌터에게 위임해요.
나 : 그렇군요..
헤 : 그런데 저도 뭐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나 : 네?
헤 : 왜 이렇게 희망 연봉이 낮아요? 이 연차에 이 연봉은 말이 안 되는데?
나 : 아, 그게, 제가 이직을 많이 하고, 그동안 커리어가 일관 되질 못해서....
주절주절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 둘째가 "엄마아~"하고 달려들어와 잠시 통화를 방해했다.
헤 : 아니 근데 ㅇㅇ업체도 업계에 비해 적긴 한데, Mee 씨가 쓴 건 더 적으니...
연봉을 낮게 부른 게 뭔가 죄를 짓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업계 생태계를 위해 적정선을 지키는 게 옳다는 의미였을까?
나 : 원래 영화 업계 쪽이 전반적으로 그래요, 하하. 영화관 현장 계신 분은 더한 걸로 알고 있어요.
헤 : 아니 근데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나 : 연봉 적기로 유명한 영화랑 디자인 업계 조합이라 그럴 수도 있고요.
헤 : 그것도 아닌 게 다른 지원자 중엔 -희망연봉을- 너무 높게 쓰신 분도 있던걸요?
이직을 많이 해서, 3d라고 불리는 디자인 직종이라, 전 직장들이 영세해서 등등. 시작은 가벼웠으나 결론은 점점 추궁이 되어갔다. 나는 어떻게든 망한 커리어의 당위성을 찾아 땜질을 해야 했다. 흡사 면접 같았던 30분간의 통화 말미, 그분은 무언가 미안하셨는지 ㅇㅇ업체 면접 팁을 슬쩍 흘려주시고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업계 다른 사람 소개 좀 시켜달라는 당부와 함께.
애초에 망한 건 면접이 아니라 커리어였던가. 낮은 연봉에도 뽑히지 않는 건 애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일관성 없는 경력 문제였을까. 헤드헌터들이 계속 연락 오는 건 경력이 아니라 '경력에 비해 싸서'였던가. 과거를 뜯어고칠 수도 없고 어쩐담. 그 날의 통화는 그렇게 물음표만 잔뜩 안겨준 채 끝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