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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Apr 08. 2020

이 시국에 남편을 쫓아내다

'가족 간 거리두기'는 언제 가능할까?


 사람 살려요... 헤엽미... 아이들은 두 달째, 남편은 한 달째 집에 갇혀 있습니다. 네, 처음에는 너무 좋았죠. 삼시세끼 같이 밥 먹고, 대화도 많이 하고, 남편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늘고... 정말 좋다고 까지 썼다니까요? 근데 이게 안 끝나요. 직장인으로 치면 야근이 한 달 내내 이어지는 셈인데,-게다가 야근수당도 없이- 이건 정말 아무리 예쁜 내 새끼라도 거리 좀 두고 싶을 만큼 지쳤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가족간 거리는 지켜주지 못했어요. 계속 내 시간 없이-딴짓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아이들을 주시해야 했기에- 타인의 요구에 나의 시간을 바치는 건,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일이었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마찬가지죠. 계속 비슷한 반찬에 질려 반찬가게에서 사 온 적도 있지만 그전에 질리도록 밥상을 차리는 노력이 있었고, 매일 쓸고 닦기는 무리니 청소기만 돌리자 했지만 그전에 매일 장난감 정리하고 쓸고 닦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집안일들은 당연하게 요구되면서도 티가 안 나는 게 특징이죠. 그 '티가 안 난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어떤 이가 가정주부를 '노는 여자'라 쉽게 이야기하고, 주부 자신조차 견디지 못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일자리를 찾게 만드는 원인, 집안일.


 또 싸움이 났거든요. 남편이 그동안 집에서 지켜보며 제게 불만이 있었나 봅니다. 네가 하는 일이 뭐 있냐, 애들이랑 잘 놀아주지도 않고 말이야 같은 불만 섞인 말들에 뻥 터져서 쏘아댔습니다. 남편이 지금 방에서 일하는 건 내가 거실에서 애들을 보는 덕분이고, 나도 충분히 일이 많다. 어떻게 하루 종일 -데리고 자는 것도 일인데!- 엄마가 개입해서 놀아주냐! 그래서 요구한 대로 직접, 하루 종일, 다정하게 아이들과 놀아주라고 주말에 애들을 맡겼더니 폰을 보여 아이들과 있다가 한 시간도 안돼 LOL해도 되냐며 물어보더군요. 그럼 그렇지....


 재택 하며 와이프 도와줬으니 스스로 좋은 남편이라 자부하는 것, 좋아요. 그런데 자의식이 지나쳐 내가 다 한양, 나 빼고 다 노는양 상대방을 게으른 사람 취급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도와주는 일은 사실 본인이 집에 있음으로 늘어난 집안일의 비중만큼도 안되거든요. 현명하거나 참을성 좋은 와이프라면 그런 계산을 모르는 척하고 남편에게 입바른 칭찬을 하겠지만, 저는 지쳤습니다. 그럴 아량을 보여 줄 만한 인내심이 바닥났어요. 엉엉 울며 참아왔던 걸 얘기했어요. 그렇게 집안일, 양육 잘 하는지 아닌지 감시하지 말고 출근하라고, 그동안 말 안 했지만 사실 없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남편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어요.


 그렇게 주섬주섬 장비를 싸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끝내고 이번 주부터 정상 출근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출근한 사람이 많다는 카톡을 하며 흐지부지 냉전을 풀었어요.-흔한 부부싸움의 프로세스죠- 그 덕분에 저는 이렇게 글을 쓸 짬도 났고요. 남편이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걸 충분히 알고, 가끔 도와주는 것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거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그런 것을 헤아릴 에너지마저 바닥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다죠. 거리를 지키기 위해 몸은 가까이 있더라도, 정신은 좀 멀리,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존중하는 태도로 버티다 보면 싸움날 확률이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코로나 너는 언제 가는거니...

https://www.fnnews.com/news/202004071757473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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