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라디오를 듣다, 앵커가 무심코 던진 멘트에 뼈를 맞았습니다.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 제도’를 소개하며 자격요건인 나이에 관해 이야기하다 나온 멘트였습니다.-모든 청년 지원은 34세까지 해당된다는 요지였습니다- 나이는 둘째 치더라도, 어차피 애매한 소득분위는 제외될 텐데 그게 뭐라고 청년의 기준을 정하는 건지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네들이 말하는 청년일 때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악착같이 세금을 매기더니, 이제와 누릴 자격마저 빼앗는 거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서른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기르며 어느새 청춘은 지나가버렸습니다. 사랑과 꿈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모이면 이사 갈 지역의 학군과 재테크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제 정말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사실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청춘 타령하는 게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첫째의 배변 훈련이 끝나가자 둘째 민이의 배변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은 곧, 아이 뒤치다꺼리가 두 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비교적 수월했던 첫째 진이와 달리, 민이는 진전이 있다, 도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며 쉽게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요의를 느끼면 스스로 유아 변기에 앉던 아이가, 요즘은 일과 중에 바지에 오줌을 싼 채로 서서 울기가 다반사입니다. 그걸 치우는 와중에 진이는 화장실에서 용변 뒤처리를 해달라고 엄마를 부릅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고, 남편의 야근이 이어지자 점점 지쳐갔습니다. 민이가 용변 실수한 팬티를 하루에 서너 번 빨면서 몸이 힘들기보다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이렇게 계속 똥오줌 묻은 팬티를 손빨래하다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것도, 일을 그만둔 것도 저의 선택입니다. 스스로 한 선택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이주 전 금요일 밤, 민이가 또 대변 실수를 했을 때는, 결국 펑하고 터져버렸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장맛비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청춘이 끝났다는 말이, 곱씹을수록 이번 생은 망했다는 선언처럼 느껴져, 분통함이 차올랐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엔 야근 대신 상사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한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갈 곳 잃은 분노를 카톡으로 퍼부었습니다.
“어떻게 일주일 내내 집에 코빼기도 안 비칠 수가 있어?
난 더 이상 못해! 내일 일찍 나갈 테니 토요일에 애들 알아서 봐!!”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도망치듯 집을 나섰습니다.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도착한 곳은 시시하게도 독서실이었습니다.-사실 자격시험을 앞두고 있거든요- 좁고 어두컴컴한 개인실에 처박혀 12시간 넘도록 숨어있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엄마’를 벗고 ‘학생’의 옷을 입자 떠나갔던 청춘이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12시간 동안 자유를 누리고 가족 품에 웃으며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청년'이 아닙니다. 육아를 하다 또 정신 차려보면 정말 중년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아무렴 어때요, 국가가 청년으로 정의하든 아니든 저는 이 모습 그대로 아이 키우고, 공부하고 그렇게 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