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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Apr 28. 2019

'연년생 전쟁'_폭풍의 서막

내가 '저출산 홍보대사'가 된 이유

한때 저출산 홍보대사를 자처한 적이 있습니다.-‘저출산’이요, ‘저출산 대책’ 말고 그냥 ’ 저출산’- 둘은 안돼, 연년생은 헬게이트야!! 누가 키워? 경력은 어쩌고? 키우는 비용은? 차라리 안 낳는 것도 좋아! 결혼? 하지 마!! 주변 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모자라, 맘까페에서 둘째 질문이라도 볼라치면, 빼놓지 않고 성실하게 절대 안 된다는 답을 달아주곤 했습니다. 그게 지옥문 입구에서 얼쩡거리는 엄마를 돌려보내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건 조언이라는 핑계로 포장해 ‘내가 이만큼 힘들다’며 타인에게 호소했던 한풀이였습니다.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둘째 출산 당시 두 돌 된 진이의 모든 행동이 미웠을 만큼 말이죠. 민이를 겨우 재우면 진이와 놀아줄 짬이 나는데, 피곤함에 찌들어, 둘째가 깨지 않을까 눈치 보며 놀아주는 건, 자주 인내심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왜 신나서 재잘대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 윽박질렀을까? 왜 잘 가지고 노는 실로폰을 뺐었을까? 어떤 변명도 자신을 변호할 수 없습니.-얼마 전,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된 당시 첫째 동영상을 보다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첫째도 아기였는데, 뭘 안다고 그렇게 혼냈을까?-


둘째 돌 때쯤 되어 혼자 이동 가능해지자, 이젠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본인이 독차지하고 있던 장난감을 만난 지 1년 된 이와 공유한다는 건 진이에게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겠지요. 어린이집에선 사이좋게 논다던데, 집에선 왜 이리 끝도 없이 싸우던지! 두 아이가 동시에 울며 달려와 억울함을 호소할 때면 얼어붙곤 했습니다. 말이 서투른 첫째와 그저 울기만 하는 둘째 사이에서 엄마는 어떤 중재안을 내놓아야 하는 걸까? 육아서에서 뭔가 본 듯도 한데 아이들의 비명에 사고 회로가 멈춰버렸습니다. 그렇게 ‘저출산 홍보대사’활동을 1년 연장했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싸움 시간은 줄고, 함께 놀이하는 시간은 늘었습니다. 네 것, 내 것의 암묵적인 규칙을 만들어, 지킬 동안 잠시 집안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진이는 제법 언니 노릇을 하며 동생과 놀아주고, 민이는 언니를 쫓아다니느라 순순히 언니의 룰에 따릅니다. 이제야 둘을 놔두고 집안일을 한다든가, 책 한 장이라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럼 이제 저출산 홍보대사를 그만 둘 거냐’라고 물으면 아직 대답은 세모입니다. 둘이 노는 시간 덕에 육아가 한결 수월해진 건 사실이지만, 만약 지금 회사에 다니는 중이라면, 수월하다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둘째 출산=경력 포기’라는 공식은 대다수에게 굳건합니다. 그건 인식뿐만 아니라 실제로 겪는 현실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면역력 약한 아이는 끊임없이 아프고, 엄마는 일주일에 한두 번 반차를 내야 합니다.-이것만으로도 일 년에 24일이라는 연차가 필요합니다. 이에 더해 전염병으로 일주일 결석이라도 하려면 답이 없죠- 이런 문제 덕에 회만 아니라 엄마도 재취업이 망설여집니다. 엄마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잊힌 존재가 될까 조바심이 납니다.


민이는 지금, 태어날 당시 언니처럼 두 돌이 되었습니다.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불분명한 발음으로  이야기하며, 품 안으로 파고드는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모순적 이게도,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르곤 합니다. 진이를 덜 혼냈더라면, 회사에서 더 버텼더라면, 다른 방법을 찾았더라면, 더 노력했더라면… 이제 그 길은 지나왔고, 새로운 갈림길에선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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