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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r 08. 2019

30대 휴직 주부의 은밀한 취미

잉여력 과잉이 만들어낸 헤프닝


“휴직하고 뭐해?”

휴직 5개월 차. 주변에서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음..뭐, 집안일도 하고, 이직 준비도 하고…”

집안일이 있기야 하지만 아이들 어린이집 등원 후부터 하원까지 5시간 내내 할 정도는 아니죠. 무언가를 하고 있긴 한데, 사실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글이 대나무 숲이라 생각하고 고백 좀 해볼까 합니다.


시작은 흔한 페이스북 광고창에 제 전화번호를 남기면서부터였습니다.-제 2의 월급을 준비하자니! 이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잖아!- 단톡방에 초대되더군요. 어찌나 친절하던지, 계좌 개설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고 자료 pdf도 나눠주더라고요. 시키는대로 통장 개설도 하고, 몇 개 종목 매수를 시도해보았습니다. 이제 막 주식시장에 입문한 애송이는 MTS화면, 차트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남들은 인증이네 뭐네하며 수익 자랑하기 바쁜 반면 저만 매일 마이너스 여도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소심한 성격덕에 용돈으로만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냥 신기하기만 했어요.


주식 속담에 이런 게 있습니다.

‘장바구니 든 아줌마가 거래소에 나타나면 고점이다’

네, 제가 그 아줌마였습니다. 흔히들 인간지표라고 하죠. 주식 시장에 들어간 때부터 지수는 폭락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윳돈을 밑천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돈이 공중분해가 되는데 마음이 편할리가 있나요. 그때부터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파랗게 파랗게 물들었네~♬


차트 읽는 법, 퀀트 투자, 트레이딩 기법, 엑셀과 파이썬을 이용한 백테스팅, 프로그램 매매 등. 전혀 몰랐던 수많은 지식들이 넘쳐나더군요. 어떤 전문가는 ‘인터넷 쇼핑에서 오만 원 짜리를 살 때도 이것저것 따지면서, 왜 그 몇 배 되는 내 돈을 단순히 남 말만 듣고 투자하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제야 얼마나 순진하고 게을렀는지 깨달았습니다. 당장 주식 공부에 꽂혔습니다. 도서관에서 산더미처럼 관련 책을 빌려다 읽고, 애들을 재울 때면 이불을 뒤집어쓴채, 잠투정하는 둘째 발에 채이면서 새벽 한 시까지 투자 칼럼을 읽고, 종토방(네이버 금융 종목 토론방의 준말)에는 상주하다시피 했습니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남편이 모를 리가 없지요.

“주식해?”

순순히 이실직고했습니다. 다행히 제 여윳돈만으로 하는 중이라 크게 타박하지는 않더군요. 남편도 결혼 전에 주식에 손 댄 적이 있긴 한데, 일 년 내내 신경  쓰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오빤 그래서 몇프로 수익 봤는데?”

 “3프로?”

 “은행수익률이잖아ㅋㅋㅋ”

 그 후로 제 주식 사랑은 양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폭락 장에는 장사가 없었습니다. 결국, 누구든 시장을 이길 순 없는 법이니까요. 만원 잃고 천원 벌기를 수십번. -10% 안쪽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제 계좌는 퍼렇게 멍들어 있었습니다.-그것도 사실 원금을 늘리는 속칭 물타기로 줄인 손실률이라는 건 비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주식 공부하던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는 하락장일 때 적은 돈으로 배우는게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건 남의 돈일 때 얘기고, 한 푼이 아쉬운 백수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그 와중에 전업투자를 해볼까 하는 허황한 꿈도 잠시 꿔 봤습니다. 은근히 트레이딩과 정보수집이 재밌었거든요. 3시 반 장 마감이  어린이집 하원시간과 딱 맞물리기도하고요. 하지만 워런 버핏의 투자수익률이 연 20%란 얘기에 빠른 포기를 했습니다. 그만큼 수익내기가 어렵다는 반증이고,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기위한 시드머니(투자원금)도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현재는 백일 전보다 안정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시장 상황에 맞춰 ETF를 적절히 분산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물려있는 인버스펀드가 있긴 하지만-아, 잠깐 눈물 좀- 크게 타격 줄 정도는 아니고요. 장 시작과 마감 때마다 들여다보긴 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만 매매하고 있습니다. 잦은 매매는 마이너스로 가는 지름길임을 폭락 장에서 배운 덕택이죠. 덕분에 주식  매매하다 인내심까지 기르며 정신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주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관심이 없을 때는 ‘음습한 도박장’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분야도 부동산처럼 투자의 일종이니까요. 다들 나이가 들면서 돈 굴릴 방법으로 주식을 조금씩 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조금 풍성해졌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오빠, 나 옵션거래 해볼까? 레버리지가 어마어마해!”

“당장 출근해, 얼른.”

남편의 사색이 된 얼굴에 저는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1. MTS : Mobile Trading System의 약자. 보통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어플로 하는 매매방식을 말함.

2. 퀀트투자 : 계량투자. 개인의 '감'이 아닌 정확한 수치에 기반한 전략을 수립하여 매도 및 매수 하는 것.

3. ETF : Exchange Traded Fund. 지수 추종 펀드.

          주가, 채권 등의 지수에 고르게 투자하여 수수료가 적고 분산투자의 이점이 있음.

4. 인버스펀드 : Inverse EFT. 주가 지수와 반대로 가는 펀드. 지수가 내릴 때 이익.

                     보통 하락장에 베팅하거나, 상승 투자했을 때 헷지(리스크 분산)로 이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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