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쓰는 편지야. 결혼 전이 마지막이니 6년 만인가? 벌써 결혼 6년 차라니! 철없던 때엔 ‘어떻게 오래 한 사람이랑 살지? 안 지겨울까?’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젠 내겐 오빠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친구야. 내 삶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어.
아직 진행형이지만 육아하느라 고생이많아. 전쟁처럼 연년생 딸 둘을 키우고 이제 한숨을 돌리게 되니 오빠가 보이네. 다소 늙고, 살도 빠지고, 나처럼 버럭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전우애가 생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고 있어.
육아가 힘에 부칠 땐 가끔 결혼 전 사건들이 생각나. 당시 친정 부모님이 오빠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내게 선 보라고 강요하셨잖아-사실 딱히 내가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야-. 그게 너무 힘들어 하소연을 해도 오빠는 괜찮다고만 했어. 후에 결혼 승낙 받는다고 부모님을 직접 찾아뵈었을 때도 민망할 정도로 홀대하셔서 중간에 오빠가 뛰쳐나가진 않을까 조마조마했어. 그래도 오빠는 웃고만 있었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집트로 국제협력 봉사 간다고 터뜨렸을 땐 오빤 헤어질 생각도 안 하더라.-덕분에 의도치 않게 부모님이 결혼 승낙으로 돌아서긴 하셨지만- 진짜 3년이나 기다리려고 했던 거야??
부모님이 반대하실 땐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한 오빠가 미웠던 것도 사실이야. ‘왜 선보지 말라고, 이집트 가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을까?’, ‘왜 큰 문제들을 박력있게 끌고 가지 않을까?’. 근데 이제는 좀 알 것도 같아. 결단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우리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둘 사이에 쌓인 신뢰가 결국 결혼으로 골인하게 했지.
돌이켜보면 그때 육체적으로는 나이는 먹었으나 정신적으로는 가정을 꾸릴 만큼 준비되지 못했던 것 같아. 사실 인생에 결혼은 없는 것으로 생각했고, 이 때문에 주워들은 것도 없어서 결혼하면 평화로운 연애의 연장선쯤 되겠거니 막연하게 짐작했던 거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순진함에 헛웃음이 나오네. 결혼과 평화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작년 명절 기억나? 결혼하고 처음이혼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성의 끈을 놓고 싸웠어. 연애와 결혼 기간을 통틀어 제일 큰 싸움을 벌였지. 싸움 후에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뒤늦게서야 깨달았어. 상대방이 당연히 이해해주겠지, 혹은 내가 상대방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란 걸 말이야. 삼십 년 넘은 둘 사이의 간극은 쉽게 메울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그런 확신을 했을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결혼한 우리지만 그로 인한 자만이 오히려 장거리 연애 시절보다 더 먼 거리로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거야. 그 후로 교만을 내려놓고 오빠를 알아가려 노력 중이야. 덕분에 관계는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서로의 실제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싸움거리는 미리 처리하는 제법 능숙한 6년 차 부부가 되었지.
사귀기 전,
“난 보기보다 밝은 사람이 아녜요. 꽤 어두운 사람이에요.”
라는 협박 반 고백 반의 말에 오빠는
“그래도 괜찮아.”
라고 답했었지. 이젠 내가 할 차례야.
“우리 식구 먹여 살리느라 힘들지? 항상 고마워. 너무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돼, 너무 힘쓰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현실이 퍽퍽하더라도 계속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알콩달콩 늙어 갔으면 좋겠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