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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r 21. 2019

뜬금없는 납량특집_육아 편

아이를 키우다 공포감이 드는 순간이 있나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소름 돋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잠깐 방심한 사이 조용해진 순간, “너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하며 엄마의 말투를 복사한 듯 따라 할 때, 외부에서 떼를 써 이러다 ‘이케아 맘충’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건 아닐까 식은땀이 날 때. 이번엔 색다른 의미로 무서웠던 경험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첫째 진이가 ‘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30개월쯤, 당시 살던 집에 들어온 지 이 년 쯤 되었을 때입니다.

“엄마, 어제 아부디#₩%×/#&이 침대를 두들겨서….”

“뭐? 아부지 똥 싸?!?”

“아니, 아.부.ㅈ디.ㅳㅗㅇ. ㅵㅏㄴ.”

“아부디 똥딴?”

“아니이~”

처음 듣는 괴랄한 네이밍에 몇 번을 되물어야 했습니다.-뭐지, 태국 귀신인가…- 진이는 재차 발음을 고쳐주다 이내 포기하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제 아부ㅈ디ㅳㅗㅇㅵㅏㄴ이 침대를 막 두들겨서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어.”

소싯적 호러 마니아인 제 머릿속엔 식스센스의 대사가 메아리쳤습니다.

‘I SEE DEAD PEOPLE.’


영화 '식스센스' 中


그 후로 아부ㅈ디ㅳㅗㅇㅵㅏㄴ(이하 아부)는 자주 진이와의 대화 사이에 등장했습니다.

“어제는 자려는데 아부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어.”

“그럴 때는 ‘하지 마!’하고 크게 얘기하는 거야.”

“‘하지 마!’했는데도 계속계속 잡아당겼어.”

이름은 태국인 같은데 불굴의 의지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한국인인가 봅니다. 애들 아빠가 범인인가 싶었으나, 당시 남편은 거실에서 따로 잤기에 안방엔 고개조차 내밀지 않았습니다. ‘상상 친구일까?’ 짐작했습니다. 저도 어릴 적 일기장을 매개로 비밀을 털어놓던 상상 친구가 있었으니까요.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아부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져 갔고요. 처음엔 침대를 두들기다가, 그다음에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밤에서 낮으로 활동시간이 늘어나고, 어린이집까지 따라와 진이를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친구와 다툰 후,

“아부가 은수를 밀라고 시켰어."

라고 이야기할 때는 이 상황을 그냥 두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차량 이동 중, 남편은 백미러로 잠든 아이를 흘끗 보며 무심하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애들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과다면 환청을 듣는대. 진이 가끔 흥분하면 쉽게 자제 못하는 것도 그 이유인 것 같고.”

검색을 해보니,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는… 조현병!!’ 저렇게 섬뜩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편의 멱살을 잡고 싶었습니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지우고 별일 아닐 거라 자신을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알아보니 '3~10세 어린이의 약 65%가 ‘상상 친구’를 가지며, 만 12세 무렵까지는 거의 모두 이런 ‘상상 친구’와 이별한다'(미국 오리건대학교 발달심리학과 마조리 테일러 교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세쯤 되면 상상으로 요리를 하는 류의 상징적 사고가 가능해져 나타나는 발달과정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 시기엔 당연한 현상이죠. 부모는 ‘그 친구’를 거짓말로 치부하거나, 자극하여 더 몰입하게 하지 말고, 다른 활동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어쩌나요, 기다리는 수밖에. 소아정신과의 서천석 박사님은 “부모의 가장 큰 무기는 시간이다”라고 했지요. 진이는 급기야 “아부가 어지르라고 시켰어!”라며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정점까지 가다, 어느 순간부터 언급이 줄어들더니, 작년 말 새집으로 이사한 후엔 아예 까먹은 듯 한 번도 언급이 없습니다.

 

아직 아이는 중얼거리며 상상 놀이를 많이 합니다. 걱정이 많은 엄마는-아이를 처음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걱정 과잉 상태가 될 수밖에 없지만- 문득문득 올라오는 불안을 누르며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냉수와 온수 사이 적당한 샤워 온도 찾기처럼, 방치하지도 그러나 호들갑 떨지도 않는 중간점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육아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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