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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y 24. 2020

아줌마가 바보는 아니잖아요

 금요일부터 새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 인플루언서... 이곳저곳을 찔러봐도 소속감이 없다는 공포는 이기기 힘들었으니까요. 새벽부터 커피를 들이부으며 바쁘게 손을 놀려도 급여와 소속이 없으면 결국 그냥 노는 백수. '소속'이라는 얄팍한 안정이 절실하던 차에 '국비지원 교육'이라는 현수막은 최면처럼 제 손을 핸드폰으로 이끌었습니다.


 교육 일정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조기 취업으로 빠진 수강생 덕에 남은 한 자리에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행운이 이어졌는지 첫 수업을 듣는 날이 하필 분기별 한 번 있다는 역량 수업. 내적 환호를 외치며 자리에 앉은 후,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주제는 애니어그램을 발전시킨 성격유형 검사였습니다.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1번부터 9번까지의 성격에 따라 팀을 나누곤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났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 사회생활에서 성격이 중요하니까.'하고 수긍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동그라미, 세모, 별 모양의 로고를 풀이하며 심리검사가 산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동그라미는 10이에요. 완벽한 숫자죠!
10에서 7을 나누면... 1.42857142857…
148257이 무한히 반복돼요. 신기하죠?
그래서 1번 유형이 4번에 영향을 주고, 4번이 8번에 영향을 주고...


시방 뭐라는 겨


 검사지에 그려져 있던 1→4→2→8→5→7→1로 반복되는 도식이 무언가 심오한 심리분석에 근거를 두었겠거니... 하며 졸던 저를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강사님의 설명.  유리수끼리 나누면 유한소수이거나 순환소수라는 건 중학생 수준의 지식인데...(참고 : https://bit.ly/2LVOzHW) 백번 양보한다 치더라도, 그래서 그 순서로 성격이 영향을 준다는 건 무슨 생각의 흐름이신지??


 문제는 그분은 어엿한 대학의 교수님이고, 강의에 앞서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롯해 오천여명의 심리분석을 해왔다는 공신력을 깔아놓은 상태였다는 것.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도 저렇게 설명했을까?' 걱정 반, 호기심 반이었지만 차마 오늘 처음 들어온 반에서 이의를 제기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청중을 졸지 않게 하는 것'이 강사의 자질이라면 그분은 단연코 최고였다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사건으로 한번, '5번 유형'이라는 학생에게 "아줌마가 경제학 책을 왜 봐요?"라는 우스갯소리로 또 한 번, 조악한 짤로 범벅된 ppt로 또 한 번 저를 벌떡벌떡 일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모든 게 여성 재취업을 돕는다는 공공기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더군요.


 부디, 그분이 카이스트 학생들 앞에서도 똑같이 강연했길 바랍니다.-그러면 여태까지 강연이 이어지지도 않았을 테지만- 부디, 제가 조는 사이 합당한 근거를 놓친 것이길 바랍니다. 이 곳의 첫 수업이 '아줌마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기나긴 교육과정이 너무 암울해질 테니까요.




Background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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