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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r 15. 2021

나의 부동산 폭망기

망했어요.

그들은 나를 '거지'라고 불렀다.

벼락거지, 이생집망. 언론이 나 같은 무주택 삼사십 대를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 2018년 청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때는 바야흐로 대세 하락장. 전세살이 4년 차에 슬슬 지쳐갈 때였다. 고장 난 도어록 교체 문제 때문에 집주인과 며칠을 실랑이하다, 남편은 홧김에 덜컥 ㄷ신도시와 ㅎ지구, 두 곳에 청약을 넣고 말았다. 특히 첫 번째로 발표가 난 ㄷ신도시는 미분양에 '큰손'마저 손해를 감수하고 대량 매물을 내놨다는 뉴스가 보도되던 즈음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곳에 덜컥 당첨이 되어버렸다. 내가 일하던 회사는 서울을 기준으로 그곳과 정확히 반대편, 우리는 밤새 입씨름을 했다. 그렇게 휑한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약간의 미련을 남긴 채 그곳을 포기하기로 결론내렸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 4억이 올랐다.


좁디좁은 전세가 지긋지긋해서 원래 살던 ㄱ시 내에서 이번엔 좀 더 넓은 평수로 집을 알아봤다. 이전 집이 급하게 빠져 짧은 시간 안에 매매를 결정하지 못하고 떠밀리듯 또 전세로 이사를 했다. 2019년도, 투자용으로 대출을 끼고 당시 집을 매입한 집주인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손을 떼기로 결심한 듯 임차인인 우리에게 집을 매수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집 앞에 변전소가 있었고... 우리는 매수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 3억이 올랐다.  


그 집을 매수한 새 집주인의 거주 통보에 우리는 계약갱신 청구권 한 번 쓰지 못하고 쫓겨나듯 이사를 했다. 서울은 이미 최고가, ㄱ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물도 워낙 없었기에 허겁지겁 현재 사는 집을 전세로 구한 뒤, 전세를 낀 매물을 알아봤으나... 이제는 대출이 막혔다. 그리고 이 집은 1억이 올랐다


어어, 하다가 모든 집값이 일 년에 1억은 우습게 올랐다. 같은 가격의 전세를 구하려 해도 2년 전에 비해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게 확연히 체감된다. 코로나로 인한 전례 없는 유동성, 낮은 금리, 아무리 이유를 대봐도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게을렀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저축, 주식, 핀테크 모든 재테크를 섭렵했으나 단지 부동산 하나에 관심이 없었다는 이유로 나는 '거지'라 불리고 있다. 


이제는 매일 밤마다 부동산 책을 펴고, 입지가 좋은 곳에 내 집이 있을지 지도를 헤맨다. 허위매물과 허위 거래를 국토부가 조사한대도 이제 거의 대부분의 아파트 매물은 신고가가 아닌 곳이 없다. 포기하자니 더 오를 것 같고, 이제서라도 매입하자니 영끌로 상투를 잡는 위험까지 떠안아야 하는 게 지금 남은 무주택자의 현실이다. '그래도, 2년 뒤엔 청약이 있으니까' 하고 걸었던 촛불 같은 희망도 후욱, 이번 LH 사태가 꺼버렸다. 3기 신도시를 취소한다면 무주택자의 희망은 사라지고,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여당을 지지했던 믿음이 무너지는 진퇴양난의 상황. 영끌 막차에 타지 못한 사람들의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나는 이 글을 마치고 또 부동산 카페와 네이버 부동산을 뒤질 테지만, 아마 원하는 답은 얻지 못할 테다. 놓쳐버린 가격은 돌아오지 않고 몇억되는 리스크를 감수하기엔 너무 소심하니까. 그리고 꽤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겠지. 성인 세 명 이상 모이면 부동산 얘기를 하고, 아파트가 모두의 돈을 빨아들이는 세상. 그곳에서 길을 잃은 채 나는 오늘도 헤맨다.

 



Photo by katie mann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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