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파테크'가 열풍이래요. 한 달 전에 갔던 대형마트에서 파값이 칠천 원을 넘은 걸 보고 식겁했습니다. 저희 집은 파를 냉동해 먹는지라 겨우 버텼지만... 결국 이주 전쯤 똑떨어지는 날이 오고야 말았죠. 어쩐다... 지갑을 품에 넣고 집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L 마트? 아웃! H 마켓? 여기도 비싸, 아웃! 단지 내 오일장도 비쌌고, 마지막 보루였던 못난이 야채 가게에서 겨우 사천 오백 원에 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파를 밑동 십 센티 가량 남겨놓고 열심히 잘라 냉동해두었어요. 빵빵하게 파로 가득 찬 지퍼백을 보니 그렇게 마음 든든할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소비 이전에 투자를 해야겠죠? 수경재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집에 있는 유리컵 세 개에 파들을 나눠 꽂았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유리컵이 더 비쌀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우리 집 식탁에 파일, 파이, 파삼 가족과 자른 당근이 입주를 했어요.
파를 키우는 분들의 후기를 보면 며칠 만에 쑥쑥 자라던데, 우리 집은 왜 안 자랄까요? 식탁에선 햇볕이 모자라 그런가 보다 싶어 베란다로 이사를 해도, 추워서 또 안 자라나 싶어 부엌 창가로 다시 옮겨도, 파들은 일주일에 오 센티가 고작... 안 자라는 건 아니지만 욕심이 났습니다. 결국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게 오히려 대파 가족을 괴롭힌 셈이었죠.
출처 : 디시 미국주식 갤러리
그즈음 저는 반도체 주에 발이 묶여 있었어요. SOXL, 미국 반도체 관련 회사 3 배 레버리지. 레버리지는 위험하다는 걸-심지어 장기로는 오히려 수익률이 안 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반도체 호황'이라는 뉴스 하나만을 믿고 불나방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처음엔 조금의 수익을 봤어요. 그리고 욕심을 내다 금리 인상 이슈가 뜨면서 순식간에 -20%가 되고 말았습니다. 떨어진 가격에 매수하면서-속칭 물타기라고 하죠- 버텼어요. 반도체 호황 이랬는데, 부족해서 세계적으로 난리라던데, 스스로 위로하면서요. 하지만 2주 가까이 떨어지다 보니 멘붕이 오더군요. 밤에 잠도 안 오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더 떨어졌는지 확인해야 하고. 차트와 수익률에 영혼을 뺏긴 느낌이랄까.
거기에 정신이 팔려 지내다가 어느 순간 부엌 창을 보니 파가 자라 있었어요. 이십 센티 정도. 꽃을 맺으려는지 잎 끝에는 몽우리마저 생겼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게 투자일까 아니면 도박일까. 조금만 더 버틴다는 게, 스스로 정한 손절 컷과 비중을 넘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거죠. 파처럼 심어놓고 믿고 기다리는 투자라면,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금리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종목은 다음 반등 때 과감하게 정리했어요.-그리고 쭉쭉 올라갔다더라-
투자를 시작한 지 2년 반 남짓. 투자는 뭘까 종종 고민합니다. 단기로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같이 갈만한 회사의 일원의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단타는 자제하고, 장기투자를 지향하는데 요새같이 롤러코스터 장세에선 마음잡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급함은 결국 득 보다 실이 많다는 걸 기억해야겠죠. 우리 집 파 세 식구를 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