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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Oct 08. 2021

부동산 까페와 이별해야 할 때

아디오스, 사요나라, 바이, 짜이찌엔...


 이 글을 기점으로 약 2개월 뒤, 우리 가족은 11월 말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기로 계약이 된 상태이다. 부동산 규제의 끝판왕이라는 금리인상과 대출규제 때문에, -주담대가 가능한 은행을 뽑기 하듯 고르는- 도박이 되어버렸지만. 계약서상이나마 내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안정된다. ‘내 집’이 있다는 건, 더는 부동산 폭등 뉴스에 속상해하거나, 매일 청약홈을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근래 5년간 부동산 폭등장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르다 이제야 매매 결정을 하며 ‘제대로 상투를 잡은 것’이라고 남편은 자조 섞인 농담을 했지만, 계약 후 급격히 줄어든 싸움의 빈도가 남편과 나의 안정된 심리를 증명하고 있다.


 ‘집’이라는 한 단어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국가가 또 있을까. 국립국어원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집의 정의는 1)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 2) 건물 단위, 3) 가정, 4) 물건을 끼우거나 보관해두는 것, 5) 바둑 용어 ¹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전의 정의보다 더 복잡하다. 어떤 때는 인테리어 등으로 내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하고(러브하우스, 신박한 정리), 가족과 편안하고 화목하게 쉴 수 있는 곳이면서(구해줘 홈즈), 부를 과시하고 외부인의 욕망 대상이 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펜트하우스, 스카이캐슬). 이렇게 집을 다룬 다양한 TV 프로그램만 봐도 집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시선이 금방 드러난다. ²


 몇 년간 집을 알아보며, 단독주택에 꽂힌(?) 적이 있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을 일도 없고, 대지지분도 당연히 많은 테니 미래에도 좋지 않을까 하는 헛된 공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다. 하지만 가용예산 내 선택 가능한 단독주택은 협소 주택이거나 지나치게 외진 곳에 있어 미취학 자녀가 둘이나 있는 우리 가족은 도저히 시도할 수 없었다.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라며 결국엔 또 아파트로 귀결. 대출 상환에 병원 등의 편의시설 거리까지 고려한다면 아마 노후를 거기서 보내야 하지 않을까.


 인정해야겠다. 나는 단독주택을 사는 모험을 하기엔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소심하다. 헛된 꿈은 접고, 두 달 뒤 무사히 도착할 ‘내 집’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인테리어로 내부를 꾸미고, 가능한 일찍 대출 상환을 끝내고, 아이들을 잘 키우며 살면 되는 일이다.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거래 시세를 매일 검색하며, 타인이 사는 곳을 헐뜯고, 내 단지만이 최고라고 매일 부동산 까페에 도배하는, 그런 일련의 일들과 거리를 두면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집은 필수재이기 때문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한 가정이 거주해야 하는 필수재이자, 누군가의 몇 년 치 노동이 지불된 곳이자, 그곳에서 셀 수 없이 다양한 추억이 쌓이는 집. 그런 필수재로 투기판이 된 게 옳은 것일까, 그걸 막기 위해 아예 필수재를 못 사게 규제하는 게 맞는 것일까. 2개월 뒤 그곳에 간다면, 노후까지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다. 평당 가격이 아니라, 이 방을 누가 썼고, 무슨 추억이 쌓였는지만 이야기하며 보내고 싶다.



-각주-

1.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

2. ‘집방’을 통해 본 ‘집’의 의미와 역할 변화에 대한 고찰, 최아름, 2021

   https://www.journalricc.org/articles/pdf/kqQ0/ricc-2021-021-00-6.pdf




(c) Photo by Markus Le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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